경기도 퇴촌의 원당리에 있는 나눔의 집과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다보면
그곳에선 한국 사람보다 일본 사람들을 더 자주 접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보다는 일본 사람들이
그곳을 더 많이 찾는다는 얘기가 되죠.
2006년 7월 19일,
그 날도 나눔의 집 역사관에서 한 일본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와타나베 쿠미란 이름의 일본인 여성이었습니다.
쿠미는 영국인과 결혼하여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월드컵 때는 한국에서 영어 통역으로 활동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서툴긴 했지만 한국말도 약간 했습니다.
“강의 빼먹으셨구나” 했더니 “빼먹다”는 말은 못알아 듣더군요.
내가 만났을 땐 서강대학교에서 역사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강의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듣는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그 날 수업이 있었지만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수업을 빼먹고,
일찌감치 일본대사관 앞에서의 수요 시위 자리에서부터 할머니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들의 점심 식사 자리에 끼어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말을 붙이는 한국적 붙임성을 과시하더니
급기야는 할머니들이 타고온 봉고 차량을 얻어타고 나눔의 집까지 쫓아왔습니다.
쿠미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역사관의 연구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무라야마 잇페이가
그 두 시간 동안 그녀에게 위안부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종종 무릎을 꿇고 그 얘기를 듣더군요.
일본인이 얘기를 해주고, 또 일본인이 얘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가끔 위안부 문제나 식민지 시대의 과거사 문제로 분노가 들끓어 오르면
우리에겐 일본 전체가 증오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눔의 집을 찾는 일본인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어디나 그렇듯이 일본에도 과거사를 발뺌과 부정으로 지우려는 일본인들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 스스로 과거사를 돌아보고 사죄하러 찾아오는 일본인들이 있습니다.
발뺌과 부정의 일본인들은 우리들의 분노가 되지만
사죄의 일본인들은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분노해야할 때 분노하는 것과 더불어
일본 속의 그 희망을 키우고 성원해주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돌아갈 때 쿠미는
‘이런 역사를 여지껏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했으며,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12 thoughts on “나눔의 집에서 만나는 일본인들 –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9”
개개인으로 그들을 대할때와 민족과 국가라는 대명사를 통했을때 그 감정이 상반될때가 가장 안타까운것 같네요…
그냥 옳은 편에 서면 되는 거 같아요.
일본인들도 수요시위할 때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국 사람들과 함께 시위하거든요.
저렇게 따뜻한 일본인들을 볼때 할머니들의 마음이 더 큰 위안을 얻겠어요.
어쩌면 할머니들은 그들로인해 벌써 모두 용서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단 생각까지 드네요.
어떻게 보면 이 문제는 일본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할머니들 초청해다가 증언듣고 그러죠. 또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를 일본내에서 벌이기도 하구요. 그때는 일본 우익의 협박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어요. 나눔의 집에 오는 일본인중 많은 수가 일본에서 할머니들 증언듣고 한국까지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새삼 행동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고 가요
성숙하신 분이네요
저렇게 인정하는게
어려운 일일텐데….
그리고 your tree ㅎㅎㅎㅎ 굿입니다~
문선양과 비슷한 점도 있었어요.
바로 그 늘씬한 키.
물론 미모는 문선양에 못미치긴 했지만요.
여기 밑에다가 글 적고싶으네요. ㅎㅎ
저 두 일본인의 사뭇 진지한 모습 보기좋으네요.
그리고 또 발견, 800번째 글 적으신 동원님의
부지런한 블로그 글~~ 늘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벌써 800포스팅에 도달했네요.
다음 달에는 서버를 옮기려구요.
아마 그때는 며칠 블로그를 닫아야 할 것도 같아요.
저는 주소를 찾아주는 DNS 서버를 외국에 두고 이용을 해서 주소 변경이 적용되는데 하루 꼬박 걸리더라구요.
덩치가 커서 어떻게 옮겨가나 그것도 걱정이예요.
다음 달에는 할머니들 주제로 사진전도 있는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질 모르겠네요. 사진만 건네주면 좋은데, 이것저것 제출하라는 것도 많고…
문선님 얘기들으니 도루피님이 무지 바쁘다고 하더라구요.
힘들더라도 아버님 많이 도와 드리세요.
그리고 짬나는 대로 여행다니시구요.
자꾸만 이것저것 다 하려는 욕심쟁이는 피곤해요.
동원님도 이제 이사준비, 사진전 준비로 더 바쁘시네요~
사진전에 중요한 역할 하시면 저도 초대해주세요. : )
확정되면 초대할께요.
내라는 서류가 많아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페이씨에게 너무 고맙더라.
마음이, 내 말이, 조금 앞선다면 따뜻한 밥 한번 먹이고 싶어.
나중에 좋은 기회가 있겠지…
나는 일본인들 중에 이페이씨처럼,
저곳을 물어물어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거라고 생각해.
대구에서 물어물어 찾아왔던 일본 학생들도 기억나.
우리 나라 사람들, 미안한 마음으로 베트남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