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하곤 해.
가령 침묵은 말이 없는게 아니라
내가 몸소 꺼내서 들어야 하는 말로 생각하는 거지.
산에 갈 때마다 커다란 바위 옆을 지나칠 때면
바위들은 언제나 침묵 일색이었어.
단 한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지.
하지만 바위가 그 자리를 지키며 겪어왔을 수천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바위가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아.
그러니 바위는 분명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닐거야.
바위의 침묵은 일종의 말이야.
바위에게 말은 그렇게 고이고, 또 고이면서 굳어져 바위의 침묵이 되지.
그 침묵, 그러니까 고여있는 말로부터 얘기를 들으려면
마치 셀프 서비스처럼 스스로 얘기를 꺼내서 들어야 해.
그래서 나는 종종 상상의 힘을 빌어
바위와 나무의 침묵 속에서 얘기를 꺼내들곤 하지.
남한산성의 수어장대에 올랐을 때도
나의 그 이상한 상상은 예외가 아니었어.
나는 망루를 지상에 굳건하게 매어놓은 중력의 사슬을
상상의 힘으로 슬쩍 풀어버렸어.
그리고 속삭였지.
날아, 날아, 자, 이제 날아봐.
그리고 나는 깔깔대고 웃었지.
수어장대가 날아가고 난 뒤의 텅빈 그 자리에서 황당해진 사람들 표정 때문이었지.
아니, 이게 어디로 갔지?
사람들이 두리번거렸어.
그날 수어장대를 날려보낸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아 산을 내려왔어.
날아간 그 수어장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그곳에 붙박혔던 제 숙명의 삶을 털어내고 난 뒤,
이름을 수어장새쯤으로 바꾸고,
어디선가 새로 살아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까.
다음에 산에 갔을 때,
이름은 모르지만 왠지 낯이 익은 새를 한 마리 만나면
나는 물어볼 거야.
너, 혹시 수어장새 아니니?
만약 새가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 나는 놀랄 거야.
아니, 어떻게 이렇게 조그맣게 변해 버린 거니?
새는 말하겠지.
난다는 것은 알고보니 나를 버리는 거였어.
그 우람하던 지상의 몸으로는 사실 날 수가 없었어.
새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래서
지상에 살면서 가졌던 내 모든 것을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어.
버리는 건 쉽지가 않았지.
이렇게 나를 버리다 아예 내가 세상에서 지워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렇지만 또 버리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하지 않고는 날 수가 없었거든.
그렇게 하나둘 나를 버리던 나는 어느날 드디어 지상의 나를 모두 버리고 말았지.
하지만 그날 딱 하나가 남아있었어.
그건 날고 싶었던 나의 꿈이었어.
바로 그날 나는 새가 되어 있었어.
아마도 그 날 새로부터 그 얘기를 들으면
너무 감동적일거 같아.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날지도 몰라.
하지만 눈물이 나면 또 어때.
어차피 산속이라 사람도 없을 게 뻔한데.
빨리 그 새를 찾아서 어디 깊고 깊은 산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가보고 싶어.
8 thoughts on “날아, 날아, 날아봐”
얼마전 아주 쌀쌀한 바람이 세차게 불던날 초저녁이었는데
잠깐 약국 갈일있어서 나갔었어요.
가는길에 이쁘고 맑은 새소리가 들려서 찾아보니 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못보던 새 한마리가 앉아 내내 울고있는거에요.
햇살맑은 아침이었다면 노래였겠지요.
‘너의 님은 어디갔니?’ 맘속으로 물었는데.^^
요며칠 동안은 그냥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새하고만 친구하며 남은 인생 그렇게 보내고 싶었어요.
새로운 거좀 올려야 하는데…
돈돈 거리는 이 놈의 세상, 너무 싫어요.
가벼워져서..비우고 버리고 그렇게 가벼워 져서 날아오르고
싶어질때가 아주 많지요….꿈을 꾸게 해주심에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현대 사회가 Fiction과 Reality 사이의 균형 관계가 역전된 시대라고 하더니,
제가 실제 세계에서 상처받고 Cyber 세계에서 위안을 얻네요.
동화같아요.
날고싶을때 술을 먹었던 저와는 정말 차원이 다른 글이예요. 쑥스~
글과 어울리는 삽화가 같이 있다면 느낌이 또 새로울 것 같은데요.
사실은 나도 날고 싶을 때는 술먹어요.
오늘도 술먹었는 걸요.
글은 또다른 나의 도피처 비슷한 거예요.
세상은 너무 골치아퍼요.
오늘따라 어디 멀리 떠나고 싶네요.
세상은 정말 골칫덩어리죠.
어제는 그것땜에 농땡이 피면서 과음을 했더만, 오늘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버렸어요.
잡생각 안하게 차라리 바쁜게 낫지 않나 싶어요. 생각의 골짜기에서는 해결나지 않는게 너무나 많아서…
오늘은 술먹고 누군가와 대판했죠.
정말 모든 걸 다버리고 그냥 새가 되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싶은 날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