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에 험악한 일을 겪었다.
내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어떤 모임에서 가까운 친척과 부딪쳤는데
아는 척도 안하고 지나쳐 버렸다.
말하자면 그 친척을 대놓고 멸시해버린 것이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찾아온 그 친척과 대판싸웠다.
그 다음 날 딸아이와 함께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나갔다.
원래는 책을 사고 난 뒤
돈암동에 들러 장모님을 뵙고 싶었다.
딸아이가 책을 워낙 많이 사는 바람에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 험악한 일의 뒤끝에서 장모님이 생각난 것은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다.
올해 설날에 나는 한 3년만에 처가댁을 찾아간 것 같다.
그녀는 그렇게 오랜만에 가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마음의 느낌이 그랬다.
장모님은 아들 셋, 딸 넷을 두었으며,
모두가 잘살고 있다.
그렇지만 아들 하나가 그렇질 못하다.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그 아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식 일곱을 키운 그 어머니의 고생과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의 못난 처지가 부모탓이 되다보니
아무래도 불만이 크고, 그러다 보니 술이 잦다.
그 아들이 어느 해 명절날 큰소리를 냈고,
그통에 언짢은 장면이 있었다.
나는 그 뒤로는 처가에 발길을 끊었다.
그때부터 장모님은 어쩌다 전화 통화의 기회라도 생기면
나에게 “사위, 정말 미안하네”라고 말씀하셨다.
이번에 내가 대놓고 멸시해버린 친척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많은 경제적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사실은 내게 무척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고마움의 바로 곁으로 그 고마움을 무색하게 하는 그들에 대한 지겨움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그 친척의 두 부부는 내가 어릴 때부터
내 눈앞에서 정말 지겹게도 많이 싸웠다, 그것도 원색적으로.
어쩌다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생기면 지금도 그들의 모습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장모님은 한 여자의 인생을 통채로 한 남자에게 내주셨다.
그 한 여자는 나에게로 와서 나의 그녀가 되었다.
한 여자의 인생을 모두 내게 내준 그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 하나가 보여준 언짢았던 한 순간의 일로 계속 나에게 미안해 하는데
한때 나를 도와주었던 한 친척에게서
나는 한번도 미안함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어쩌다 전화 통화의 기회라도 생기면
자신들을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 안부도 없는 나를 꾸짖는 것이 그들의 첫마디이다.
그 험악한 일의 뒤끝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내게 미안해 하던 장모님이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에겐 미안하지 않은데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나온 딸을 내게 내준 그 어머니에겐 많이 미안하다.
6 thoughts on “장모님 생각”
기옥언니는 좋겠다. 언제나 달려가 뵐수있는 엄마가 계서서…저는 3월만 되면 우울해지면서 순간순간에 울컥 울컥해요. 엄마 가신날이 황사가 심한 이때였거든요. 중환자실에서도 식구들 밥 걱정을 하셨던….끝없이 주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인가요 ?
사람들은 엄마가 하은이를 보내준거라네요.
언니네 엄마를 뵈니 울 엄마가 또 보고싶다.
저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절절해요.
아버지는 어떻게 7남매를 두고 가실 수 있었을지…
울 엄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씩씩한 엄마여서 우리 7남매를 다 거둘 수 있었을거예요.
그 씩씩한 엄마가 이젠 얼마나 가벼워지셨는지… 제가 안으면 한 줌밖에 안되요.
엄마는 이제 저에게도 안기는 아기처럼 아주 작아지셨더라구요.
몸 속의 진액을 다 짜서 자식들에게 주시고 이제 깃털처럼 가벼워지신 분… 그런 분이 어머니신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에게 시작을 알리는 3월이
하은 엄마에게는 가슴 한쪽의 헛헛함을 쓸어내리는 3월이군요.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고픈 그런 것…
우리 내일 맛있는 밥먹으면서 고픈 배를 좀 채워보자구요… 그리고 고픈 마음^^도 채워보자구요…
인생을 절반 넘게 살아온 내게 아직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큰 절망인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아마도 어느날 오후 낮잠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꿈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엉엉~~ 얼마나 울었던지 일어나보니
얼굴에, 온 몸에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적이 있었다…
울 엄마 많이 늙으셨다…
다 퍼주고도 아직도 퍼줄게 남으신 우리 어머니…
우리 엄마의 반만이라도 닮은 딸이 될 수 있을런지…
가끔 카메라를 들고
장모님의 하루를 아침부터 밤까지
모두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고.
어머니들의 삶은 생각하기만 해도 왜 이렇게 슬픈 거지.
저도 얼마전에 안좋은일을 겪어 다시는 명절에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 생겨버렸네요.
이럴때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보기 싫을것같고
그자리를 피해 버리고 싶을것같아요.
전후사정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제게 돌아오는 힐난의 목소리들 정말 싫었거든요.
미리 나중에 봐야할 상황 그려보는것도 쓸데없는 짓인데..
이런때는 저도 제게 언제나 옳바른 길과 생각을 제시해 주셨던분들이 그리워지네요.^^
이른바 명절의 고난!
명절 때마다 어디 해외로 나갔다 오던가 해야 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