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해준 우리의 시대 – 무용 공연 <<아! 몰라 Overlook-Overwatch>>

Photo by Kim Dongwon
2023년 11월 16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 무용 공연 <<아! 몰라 Overlook-Overwatch>>를 보았다. 현대 무용은 추상화 만큼이나 어렵다. 이번 무용도 예외가 아니었다.

● 제목은 이중적이다. Overlook은 못보고 지나치는 것이지만 Overwatch는 감시하다는 뜻이다. 정말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 시작은 사람이 무대를 기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까만 윤곽으로 움직였다. 때문에 그림자가 기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자는 까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또다른 사람이 무대를 걸어나와 그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후 스포트라이트가 켜졌을 때 그 자리에서 둘이 껴안고 있었다. 둘은 이제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였다. 우리가 우리의 허상, 그러니까 그림자로 만날 수는 있지만 만나다 보면 실상이 드러난다는 얘기였을까. 그림자로는 서로를 껴안아 하나되는 단계로 가는 것까지는 쉽지만 실체을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서로를 껴안고 하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은 결국 갈라진다. 그런데 갈라지는 형태가 이상하다. 서로를 껴안은 손을 놓지 않은채 가운데가 먼저 벌어지고 이윽고는 서로를 놓으면서 바닥에 눕는다. 서로를 놓지 않은 손이 마치 한번 맺은 인연을 쉽게 끊어버릴 수 없는 인간 사이의 관성 같았다.

● 무용수들의 분장과 옷을 두고 함께 무용을 본 일행의 의견이 엇갈렸다. 나는 거미 같다고 했고 한 명은 개미 아니냐고 했다. 출연한 배우는 꿀벌일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내가 거미 같다고 한 것은 그 움직임 때문이었다.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느낌보다 은밀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움직임에선 거미의 느낌을 받았지만 거대 현대 사회의 일원인 미미한 존재로서의 우리들로 보면 개미에 가까워진다.

● 무용은 언어를 지우고 몸동작으로 언어를 대치하려 한다. 말하자면 몸동작으로 다시 쓰는 언어가 무용이다. 언어는 몸에 실리면 느낌이 달라진다. 그 달라진 느낌의 매력이 무용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대개 무용에선 몸의 선을 살릴 때가 많은데 이번 무용은 몸을 부풀린 복장으로 몸의 선 대신 움직임에 집중한 느낌이었다.

● 몸이 언어가 되는 순간은 놀라울 때가 많다. 가령 얼굴 앞에서 가운데를 벌려 세로로 눈의 모양을 만들어주면 외눈박이의 얼굴이 탄생했다. 그 순간 우리는 외눈박이의 상형 문자를 갖는 셈이다. 문자보다 훨씬 느낌이 강렬하다.

● 몇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먼저 두 사람이 무대를 가로질러간 장면이 있었다. 한 사람은 기어가고 한 사람은 서서 갔다. 기어가는 사람은 느렸고, 서서 가는 사람은 빠른 동작으로 현란한 몸짓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둘의 이동 속도는 같았다. 둘은 동작을 서로 바꾸곤 했다. 우리는 속도에 집착하는 시대에 산다. 하지만 우리가 빠르다고 느끼는 것이 혹시 기어가는 것과 속도는 같은데 같은 자리에서 몸짓만 현란한 정체된 속도의 환각 같은 것은 아닐까. 기어가는 느린 속도와 현란한 동작으로 빠른 것 같지만 여전히 똑같은 둘의 속도가 불러일으킨 질문이었다.

● 무용 공연이어서 대사는 없었지만 중간에 몇 마디의 대사가 있었다. 거기, 누구 없냐는 대사였다. 당신들은 내가 보이지만 내게는 당신들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소용이냐고 했다. 왜 내가 안보이는 것일까. 내가 익명의 존재일 때는 그렇다. 익명으로 댓글을 달 때는 나는 상대가 보이지만 상대는 내가 보이질 않는다. 익명의 댓글 테러가 난무하는 우리의 인터넷 시대가 스쳐 지나갔다.

● 무용수가 쓰러져 무대에 누운 장면이 있었다. 마이크가 내려와 그의 숨소리를 들려주었다. 숨소리가 들리니 살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숨쉰다고 살아있는 것일까. 그런 삶이라면 오히려 죽음보다 더 힘겨울 수도 있지 않을까. 살아있다고 숨소리를 들려주었지만 그가 죽음보다 더 힘겹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 많은 무용수들의 동작으로 무대가 어지러울 때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 무용수가 구석에서 추는 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문득 몸을 바람으로 채우고 그 바람의 춤을 몸으로 구현하면 저런 동작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무용수의 동작에서 바람의 춤을 본 셈이다. 우리는 공기로 숨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숨쉬기 위해선 바람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대의 한쪽 구석에 우리가 숨쉬는데 진정으로 필요한 것, 바로 바람의 춤이 있었다. 내 시선은 다른 무용수들을 뿌리치고 그 무용수가 추는 바람의 춤에 잠시 초점이 고정되었다.

● 아는 배우가 나왔다. 김현아이다. 아는 배우는 부작용을 불러온다. 가령 김현아가 나온 영화 <<결백>>을 보고 나면 영화의 내용은 다 지워지고 그가 영화 속에서 한 한 마디의 대사, “조용히 하세요”만 기억에 남는다. 그 부작용은 이번 무용 공연에선 다른 형태로 반복되었다. 바로 무대 위에서 김현아가 어디에 있는 지 자꾸 찾게 된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이 모두 모였다가 무너지듯 바닥으로 쓰러지고 그 한가운데서 김현아가 나타났을 때는 우와, 김현아다!라고 소리를 칠 뻔 했다.

입장권
입장권에 특이하게 내 이름까지 찍혀 있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