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폭주를 막는 모래알갱이를 위한 노래 – 이소선합창단의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문화제 공연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1월 23일 명동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문화제 공연
서울 명동 세종호텔 앞

이소선합창단은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투쟁문화제에 함께 했다. 집회는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앞의 도로에서 열렸다. 쫓겨난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노조의 싸움은 힘든 싸움이다. 이 싸움이 힘든 것은 싸우지 않고도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싸워서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맞선 싸움은 성취를 위한 싸움보다 힘들게 마련이다. 아울러 상대가 탐욕의 자본이란 점에서 이 싸움의 힘겨움은 훨씬 더 커진다. 탐욕의 자본은 한 호텔이 돌아가는데 있어 노동이 갖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노동자를 쫓아냈을 때 얻어지는 이익만을 계산할 뿐이다. 그와 달리 노동자에게 일터는 월급을 넘어 삶의 의미와 동의어가 되는 귀중한 곳이다. 그 소중한 곳을 되찾으려는 노동자의 싸움을 가리켜 세종호텔 노조의 허지희 사무장은 모래 알갱이에 비유했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노조의 집회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말함이다. 그러나 동시에 허지희 사무장은 신발 속의 모래 알갱이 하나가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고 했다. 모래 알갱이는 작지만 자본의 폭주를 막는 제동의 힘이 된다. 그래서 작지만 크다. 작지만 큰 그 모래 알갱이 집회가 매주 목요일 명동의 세종호텔 앞에서 열리고 있다. 11월 23일의 목요일에도 예외가 없었다.
이소선합창단은 두 곡의 노래를 불렀다. 첫 곡은 <우리라는 꿈>이었다. 자본이 폭주하는 세상에선 삶을 향유하며 살 수가 없다. 그저 하루하루 견디는 삶이 주어질 뿐이다. 노래는 심지어 그 세상에선 “저 바람도 견디고 있다고 저 햇빛도 견디고 있다고 저 꽃들도 견디고 있다고” 말한다. 바람이 불어도 가슴의 답답함을 씻어내 주지 못하고 햇볕의 따사함도 위로가 되지 못하며 꽃들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지 못하는 세상일 것이다. “하루치 노동”이 “하루치 눈물”이 되는 그 세상에선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루하루를 견뎌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놀라운 것은 그 절망의 세상에서 노동자가 일어나서 싸운다는 것이다. “주저 앉지 않을 거야,” “패배하지 않을 거야”라며 길고 오래 복직을 위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일어서서 싸우는 노동자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연대가 만들어내는 그 우리로서의 노동자들이 바로 노래의 앞에 앉아 있었다. 노래는 그들을 노래하고 있었다.
두 번째 곡은 <나를 일으킨 친구> 였다. 이소선합창단에서 새로 만든 곡이며 이 날 집회에서 처음으로 불렀다. 노조의 싸움이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패배의 순간에도 노동자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노래는 바로 그것이 “꺼지지 않는 눈빛”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눈빛이 다른 노동자의 “심장을 깨운”다. 그러면 깨어난 노동자의 “팔에서 주먹이 움튼”다. 노동자는 이제 “앞서다 쓰러진 건 패배가 아냐”라는 결연한 선언에 이른다. 노동자에게 패배는 없다. 노동자에겐 “먼저 스러져 나를 일으킨 친구”가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는 “쓰러짐으로 영영 이긴”다. 집회에 모인 노동자들이 다들 많이 힘들어했다. 어찌 힘들지 않으랴. 그러나 노래는 그들이 힘들게 싸워 지치고 쓰러질 때, 그 쓰러짐이 동시에 일어남이었노라 증언한다. 노래 앞에 모래 알갱이처럼 작지만 말할 수 없이 큰 노동자들이 여전히 앉아 있었다. 노래는 또 그들을 노래했다.
두 번째로 부른 <나를 일으킨 친구>의 노랫말은 차주일 시인의 시가 기반이 되었다. 시를 제공한 차주일 시인이 집회에 함께 했다. 합창단의 노래가 흐를 때 소매 밖으로 나온 그의 주먹에서 굳건하게 힘을 더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나중에 소감을 물었더니 노래를 듣는 동안 자신의 심장이 생애 세 번째로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 심장이 뛴 것은 태어났을 때였고, 두 번째는 첫 사랑을 만났을 때였다. 한 시인의 시가 노동자에게 건네는 노래가 되었을 때, 노래는 시인의 가슴으로 되돌아가 그의 심장을 뒤흔들고 요동치게 만든 세 번째 박동이 되었다.
앵콜이 나왔고 합창단은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로 앵콜에 응했다. 노래는 “우리가 지은 밥과 만든 옷들과 우리가 쌓은 벽돌 모두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우리 새세상”을 말한다. 노래는 밥을 짓고 옷을 만드는 노동, 또 벽돌을 쌓는 노동에 빗대어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로 세종호텔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때문에 세종호텔은 자본가의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것이다. 그리고 세종호텔이 노동자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세상이 노동자의 “피땀”이 “찬란한 꽃으로 피어”나는 새세상이다. 그 노동자들이 노래의 앞에 앉아 있었다. 노래는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들을 노래했다.
집회의 마지막 순서로 모두가 <파업가>를 불렀다. 집회 참가자들은 “하나되어 우린 맞선다 승리의 그날까지”라고 노래했다. 노래의 모두가 하나였다. 모래 알갱이였으나 자본의 신발 속을 파고 들어 그 폭주를 막고 있었다. 작았으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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