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 가고 싶다

설악산을 꼭대기까지 오른 건 두 번입니다.
2005년에 처음으로 올랐고, 2006년엔 그녀와 함께 올랐습니다.
설악산 말고도 오른 산은 여럿입니다.
오른 산을 손에 꼽아보면
치악산, 월악산, 한라산, 태백산, 소백산, 계룡산, 남원 봉화산,
그리고 가장 가까이로는 검단산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산과 달리 설악산은 그 이름만 입에 올려도
다시 그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주체못할 정도로 턱밑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무엇이 나를 설악산으로 이끄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짐작가는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설악산은 오르고 나면 얼마가지 않아
내가 걸음을 시작한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 유일한 산이었습니다.
나는 설악산에서 온전히 산에 고립될 수 있었습니다.
산에 왔다는 느낌이 가슴에 확 다가오는 순간이었죠.
대청봉에서 속초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너무 아득해서 눈에 뻔한 다른 산과는 좀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산의 품에 나를 유배시킨 그 고립감이 바로 설악산의 매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올해는 아무래도 설악의 품에 안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엔 10월 15일날 설악산에 올랐습니다.
버스가 한계령을 올라갈 때,
차창으로 나를 맞아준 설악산의 한 봉우리입니다.
그때부터 벌써 가슴이 뛰고 있었죠.

Photo by Kim Dong Won

정말 첫해는 아무런 준비없이
그냥 카메라와 렌즈만 챙기고 무작정 한계령에서 대청봉까지 걸었습니다.
한계령에서 시작된 걸음이 한참 급하게 높이를 높이자
저 밑으로 오색으로 내려가는 한계령 길이 굽이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엔 10월 16일에 설악산에 올랐습니다.
그녀와 함께 간 길이었습니다.
한해전과 달리 안개가 많은 날이었습니다.
한계령 길이 여전히 굽이치며 오색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엷은 베일이 앞을 가리고 있어 앞을 조심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다시 2005년입니다.
시간이 나면 바위 하나하나에 올라 그 바위가 내려보는 풍경을 담고 싶었지만
사실 바위의 얼굴만 재빨리 카메라에 담고 길을 가는 것도 벅찼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입니다.
산들이 가을색에 물들어있는 빛이 역력합니다.
멀리 한계령 길이 이제 손톱만하게 축소되어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의 설악은 안개와 어울려
어렴풋한 윤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산은 형형색색의 가을색을 버리고 오직 선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보기에 좋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에 대청봉에서 오색으로 내려오다
오색 계곡에서 찍은 단풍입니다.
단풍의 가운데서 구름이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에도 한해전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하루에 설악을 다녀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중간에 넘어져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중청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덕분에 다음날 대청봉에서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우리의 하루가 매일매일 그렇게 눈부시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에 대청을 눈앞에 두고 내려다 보았던
속초 방향의 풍경입니다.
바람이 너무 거세 사진찍는 동안 숨쉬는게 힘들었습니다.
특히 대청을 올라가기 전의 중간 부분이 바람이 거세었던 기억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 봉정암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멀리 히끗한 부분이 봉정암이 있는 곳입니다.
히끗한 부분은 봉정암에서 또 올라가야 합니다.
힘들어서 그냥 쳐다만 보고 내려왔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내려갈 때는 계곡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는 물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나도 물처럼 미끄러져 내려가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하긴 참지 않으면 또 어쩌겠어요.
물은 졸졸거리며 경쾌한 보행으로 계곡을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부럽긴 했지만 그냥 같이 길을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간간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풍 때문이었죠.
아마 올해의 그림은 또 다를 겁니다.
가을은 매년 똑같이 오고 가는 듯하지만
매년 다른 게 가을이란 것을 설악에 가면 여실히 느낍니다.

Photo by Kim Dong Won

삶의 아름다움은 색이 아니라
배색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풍은 온통 붉은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적절한 배색으로 제 위치를 잡는 것 같았습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6년엔 내려오는 길을 백담계곡으로 잡아
길고 오래 숲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엔 다리를 절룩거려야 했지만
그 길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오래오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가을의 설악은 특히나 못견딜 정도로 걷고 싶은 욕망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설악은 어디나 만만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호락호락하지 않은 품을 몇시간을 걸어 다시 찾아가고 싶습니다.

22 thoughts on “설악산에 가고 싶다

  1. 안개와 어울려 어렴풋한 윤곽으로 흐르는 설악과
    동해에 떠오르는 불타는 태양은 정말 사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네요.
    덕분에 설악산 귀경 잘~ 하고 갑니다…..

    1. 설악산은 한번 올라갈만 해요.
      제일 짧은 코스가 오색에서 올라가는 건데 네다섯 시간 걸린다고 하더군요. 검단산 두번 올라갔다 내려올만한 시간인데 올라가는데 그렇게 걸리기 때문에 좀 힘들긴 하죠. 저희는 항상 한계령에서 가는데 그게 제일 쉬운 코스라고 어떤 사람들은 또 싱겁다고 그리로는 안가더라구요.

    2. 소시적 학창시절에 외설악은 매해 겨울 갔었어요.
      울산바위, 금강굴등이요.
      그리고 딱 한번 여름에 내설악에서 마등령고개를 넘어 외설악으로 넘어온 적도 있고요. 정말 20대 어렸을 때 일이지요.
      forest님 말이 사진 찍으면서 가면 들 힘들긴 하다던데 ….

    3. 그때는 설악산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 거 같아요.
      저는 놀러다니는 건 거의 못해보고 자랐는데 알고 보니 그냥 시골서 자란 것이 큰 혜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고향은 남들은 그냥 지나쳐 가지만 저에겐 남다른 볼거리가 있는 곳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언제 한번 고향의 산을 하루종일 속속들이 돌아보고 싶기도 해요.

  2. 트랙백을 걸어봤는데요…
    이걸 하면 제 블로그에서 이 글로 연결되는 건줄 알았는데 그 반대네요. 어떻게 삭제를 하는 건 지도 모르겠구요.
    제 글에서 이 쪽으로 올 수 있게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1. 트랙백은 내 블로그의 글 전체를 상대방 블로그의 어떤 글에 링크 방식으로 다는 댓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서 트랙백을 쏠 수는 있는데 가져올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제가 트랙백을 쏘았습니다. 덕분에 단풍 구경 잘했어요.
      단풍보다 중간에 등장한 안경쓴 까메오가 가장 예쁘던 걸요.

    2. 감사해요.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에게 제대로 된 단풍 구경시켜드릴려고 트랙백을 시도했던 건데… 매일 여기 드나들며 배우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녜요.^^

  3. 사진을 보니 더욱 가고 싶다.
    그래도 당신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일하니까 일할만 난다.
    비록 올해는 멋진 단풍과 멋진 산행을 못해서 서운하긴 하지만
    겨울산이란게 또 있으니까 겨울 눈산행을 해보자.
    생각만 해도 멋진 걸~ 일할맛 난다~^^

    1. 자꾸만 날씨가 따뜻해져서 올해는 눈이 올까 싶어.
      눈올 때 참 강원도 많이 갔는데… 속초, 백담사, 오대산, 태백산, 선자령… 다 눈올 때 갔었는데… 눈은 흰빛의 바다야. 그날 우린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지. 생각만 해도 좋다.

  4. 요즘처럼 등산에 취미가 없던 계곡파 시절에 설악산을 간 적이 있었답니다. 다들 금강굴까지는 가자고 보챘지만 저는 그 밑에 앉아 감자전과 막걸리를 마시며 할머니랑 이바구만 했었지요. 그때 정상에 서본 산은 치악산이 유일했답니다.
    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행운은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더군요.

    1. 저는 강원도에서 20여년 동안 어린 시절을 보낸 관계로 사실 산이 좋은 건 잘 몰랐어요. 매일 거기서 놀았으니까요. 왜 우리가 항상 어딜 놀러가면 그곳 사람들이 여기 뭐가 볼게 있다고 이리 찾아오나 하는데 제가 그 꼴이었죠. 지금도 그 버릇은 못버리고 있어요. 서울에 뭐가 볼게 있다고 이렇게 구경들 오나 한다니까요. 그러면서 이제는 제가 자랐던 곳으로 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5. 저도 가고파요~~
    보쌈을 해서래도 댈꾸가주세요~
    약관 : 보쌈시 몸무게로인한 상해에 대해선 책임지지않습니다.
    약관에 동의하십니까?

  6. 산 타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마구 유혹하네요~ 바라보는 게 좋습니다^^
    단풍색이 마구 붉어요~_~
    가을은 산에 가야지 더 빛을 발하겠습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요.

    1. 산타는게 아무래도 좀 힘들죠.
      바닷가처럼 자전거 타고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래도 가을에는 날씨가 선선해서 좀 덜 힘들어요.
      가까운 남한산이라도 자주 다녀야 겠어요.

  7. ‘삶의 아름다움은 색이 아니라
    배색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단풍은 온통 붉은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적절한 배색으로 제 위치를 잡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멋진 사진에,
    설악으로 달려가고픈 자유본능을 일깨우는 글에,
    마음에 남는 인생의 진리 같은 명언까지 남기시고용….

  8. 저두요! 저두요! 저두요~~~~
    설악산 넘흐 좋아요!!
    이상하게도 그산은 저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도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고등학교때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 전 설악산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름만 다양함이 있는 산이라고나…
    어느하나 모자란게 없는 듯 합니다. 올가을 설악산에 가보고 싶네요…

    1. 카메라 한대와 렌즈 다섯 개, 그리고 삼각대를 짊어지고, 게다가 먹을 것도 좀 챙겨서 설악산 대청봉까지 갔다는 거 아니겠어요. 중간에 옆을 지나는 사람들이 “뭐, 하나 들어드릴까요”까지 했다는…
      삼각대 짓조로 하나 사고 싶은데, 넘 비싸요. 산에 갈 때 쓰기 좋은 마운틴 시리즈가 있는데 제일 싼게 48만원이나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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