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서 노래를 대면한 시간 – 이소선합창단 2023년 송년 작은 음악회

Photo by Kim Dong Won
2023년 12월 16일 이소선합창단 2023년 송년 작은 음악회
서울 방배동 공간 소선

이소선합창단이 2023년 12월 16일 토요일에 송년회를 겸하여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장소는 방배동에서 자리하고 있는 합창단의 자체 연습실 ⟪공간 소선⟫이었다. 합창단의 후원자들이 초대되었으며, 단원들의 가족과 친구, 친척, 지인들이 함께 해주었다.
초빙객들과 합창단이 거의 반반으로 비율을 맞추었다. 말하자면 물반 고기반, 아니 관객반 노래반의 음악회였다. 연습 때마다 합창단이 앉아 있던 자리가 오늘은 초빙객들의 자리가 되었고, 지휘자가 서 있던 자리는 합창단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음악회는 합창단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관객이 객석에서 노래를 듣는 음악회라기 바로 코앞에서 노래를 대면하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초빙객들이 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채웠을 때 관객들을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알토 김진영 단원이 만든 영상이었다. 영상은 올해 35회나 연대 공연에 나가 노동자들이나 이 땅의 상처받은 사람들과 함께 한 합창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악회는 노래로 시작되었다. 노래는 “끝내 내 돌아갈 곳”이 “빛나는 노동의 나라”이자 “눈부신 노동의 나라”라고 했다. 시작의 노래는 <영원한 노동자> 였다. 노동이 눈부시게 빛나는 세상이 오고 그 세상이 영원히 이어지는 꿈이 노래 속에 담겨 있었다.
음악회를 연 노래가 끝났을 때 두 명의 사회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장성욱과 임미진이었다. 둘은 자신들을 연습이 끝났을 때 돌아가는 집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대개는 그런 긴 설명없이 그런 사람들을 부부라고 부른다. 둘은 합창단은 소개하고 합창단이 부를 다음 곡을 소개해 주었다.
합창단이 부른 두 번째와 세 번째 노래는 <대결>과 <산디니스타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대결>을 부를 때는 노래 속의 노동자들이 영원한 노동자의 세상을 위하여 노조의 이름으로 뭉친다. 그리하여 “힘찬 투쟁”과 “민주 노조”가 노동자의 ‘숙명’이 된다. <산디니스타를 위한 노래>에선 그렇게 싸울 때, “우리가 지은 밥과 만든 옷들과 우리가 쌓은 벽돌 모두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고 기쁨과 자유 평등을 누”리는 세상이 도래했다. 노래는 노래 속에서 세상의 이상을 만든다.
두 곡이 끝났을 때 마이크를 잡은 것은 합창단 대표 김종아였다. 김종아는 합창단이 매년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는데 올해는 두 곡의 노래 새로 탄생했다고 알려주었다. 둘 모두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우연을 나누어 가졌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고정희의 시가 그 시어들에 리듬을 받아들여 상처 받은 영혼들에게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날아서” 갈 날개를 달아주려는 노래가 되었다. <나를 일으킨 친구>에선 차주일의 시가 “쓰러져 나를 일으킨 친구”의 얘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작사자인 차주일 시인이 귀한 걸음을 해주었고, 두 곡을 작곡한 이경아 작곡가도 딱 맞추어 자리에 함께 해주었다. <나를 일으킨 친구>가 흐를 때 차주일 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노래로 시를 일으킨 합창단에 경배를 표했다.
두 곡의 노래가 끝났을 때 사회자 장성욱의 광고가 있었다. <서울의 봄>을 능가하는 작품 광고였다. 검은 선글라스로 등장부터 웃음을 불러온 그의 광고는 “잃어버린 음정을 찾아서”란 대사로 몇 사람들의 배꼽을 뽑고야 말았다. 신입단원 모집 광고였다.
마지막 노래는 <우리라는 꿈>이었다. 결국 세상은 그 누구의 세상도 아니었다. 세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했다. 꿈은 우리들 자신이었다. 노래는 견디면서 우리가 모두 손을 잡고 우리가 되자 했다. 노래는 그 우리가 “결코 패배하지 않”는 우리라 했다.
앵콜이 있었다. 앵콜이 나왔을 때 지휘자인 임정현이 아주 많은 앵콜곡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웃음으로 받았다. 첫 앵콜곡은 <천리길>이 장식했다. 하지만 많이 준비된 앵콜곡의 첫 곡에 불과했다. <다시 또 다시>와 <진군의 노래>가 이어졌고, 그것으로도 끝이 나질 않았다. <해방을 향한 진군>이 네 번째 앵콜곡으로 관객들을 뜨거운 열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다행이 앵콜은 네 곡으로 끝이 났다. 더 이어졌으면 관객들이 돌아가면서 앵콜을 미리 받고 본공연을 나중에 본 느낌으로 엄청나게 혼란스워졌을지도 모른다.
음악회가 끝나고 준비한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 있었다. 보통은 이런 행사에서 몇 명의 내빈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소선합창단엔 방문한 손님들이 모두 귀한 내빈이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며 자기 소개를 해야 했다.
관객 중 한 분이 노래를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노래는 사실 어느 정도의 전기력을 갖는다. 노래를 들을 때 짜릿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래와의 거리 때문에 송전되는 과정에서 전기력을 상실하고 만다. 이소선합창단의 송년 작은 음악회에선 관객과의 거리가 매우 짧아 노래가 갖는 전기력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관객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동시에 감전되었다. 다행이 전율로 치환되는 특별한 감전이었다.
나는 끝까지 있지는 못했다.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갔다는 얘기로 미루어 늦은 시간까지 송년회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들 하지만 이소선합창단에선 좀 다르다. 노래는 짧고 술자리는 길다. 그것도 무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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