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 내려왔다. 느닷없이 혼자 나선 걸음이었다. 속초에 내려오니 그녀가 속초에 있었다. 마치 옛 연인을 만난 듯 그녀를 만났다. 집을 나와 생활하다 보니 얼굴보는 시간 자체가 거의 없었다. 잠시 얼굴 보고 같이 저녁 먹기로 약속을 한 뒤 헤어졌다. 나는 정한 숙소에 여장을 풀고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가 눈덮인 설악산에 홀려 청초호로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자꾸 산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넘어가는 저녁해가 눈밭에 그려내는 풍경이 내 걸음을 산으로 홀렸다. 해가 질 때까지 걸음은 자꾸 산쪽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러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러 저녁 때가 되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시간이 되었다는 전화였다. 내가 있는 곳을 묻더니 너무 멀다고 차를 갖고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지도앱으로 가늠했더니 걸어서 돌아가기엔 40분이나 걸린다고 나왔다. 차로는 9분 거리였다. 그녀와 저녁 먹었다. 술도 한잔 했다. 같이 한 시간의 상당 부분은 낄낄거리는 웃음이 채웠다. 지난 한 해를 잘 보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때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삐걱대던 관계를 복원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나도 내 숙소에서 혼자 밤을 보내고 있다. 내일 하루 더 있을 생각이다. 속초는 언제나 둘이 놀러간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속초는 우연히 걸음한 어느 날 그녀를 만난 곳이 되었다. 때로 인연이 장소를 특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