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양자역학 세상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2월 19일 강원도 속초의 외옹치항에서
나의 그녀, 옥

무려 3일 동안을 그녀와 함께 속초에 있었다. 함께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서로 일을 보다가 짬이 나는대로 만난 특이한 여정이었다. 숙소도 달라서 밤은 서로 홀로 보내야 했다. 내가 집나와 혼자 산지 한해가 다 되어 가지만 그 전에는 30년이 넘는 세월을 그녀와 결혼한 사이로 항상 붙어 살았다. 그 30년 세월 속에는 속초를 함께 다니러 왔던 기억도 아주 많다.
그녀가 어느 바닷가를 지나다 말한다. 엇, 우리 언젠가 여기 호텔에서 묵었는데 호텔을 리모델링했네. 내가 친절하게 무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었다. 그건 나는 아니라고.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도 덧붙여 알려주었다. 내 기억력이 그녀의 기억력보다 훨씬 좋다고.
무수한 사내들이 그녀와 시간을 함께 하지만 그들은 모두 지워지고 그 자리는 나로 대체된다. 불쌍한 녀석들이다.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갖지 못한다. 나는 그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같이 있지 않은 시간에도 그녀의 옆은 언제나 내 자리가 된다.
여러 차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내가 갔던 곳으로 지나쳤다. 그녀가 여행을 할 때면 나는 함께 하지 않아도 곳곳으로 흩어져 동시에 존재한다. 떨어져 산다는 것이 가끔 무의미하다. 내가 현대의 양자역학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저녁에 말을 나누다 그녀에게 양자역학에 대해 슬쩍 말해주었다.
나는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아서 자주 관련 책자를 들여다 보곤 해. 양자역학이 쉽지가 않은데 최근 읽은 책은 아주 쉽게 양자역학에 대해 얘기해 주더라. 그 책에 의하면 우리의 세상은 입자와 파동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현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거야.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는 없다는 거지. 그런데 양자의 세상에선 이상하게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거야. 보고 있으면 입자인데 눈을 돌리면 파동으로 움직인다는 거야. 그래서 세상이 이상해져 버려.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도 존재할 수는 없는데 내가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일이 벌어지지.
그녀가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들어도 알 수 없는 경험 세계가 있긴 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가지도 않았던 그녀의 시간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내게는 그녀가 이상하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전역학의 세상을 붙들고 있는 것 같은데 가끔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양자역학의 세상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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