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행 중의 대화들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2월 19일 강원도 속초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의 내린천휴게소에서
나의 그녀, 옥

3일 동안 속초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동안, 혹은 저녁 때 숙소에서 그녀와의 사이에 많은 얘기가 오갔다. 그 중 몇 가지를 기록해 놓는다.

설악산 사진을 찍느라 청초천을 따라 걷다가 해가 졌다. 해가 지고 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딘지를 물었고, 내가 눈에 보이는 건물의 이름을 말해주자 차를 갖고 데리러 왔다.
나: 해가 지니까 기온이 확 바뀌네. 갑자기 추워지더라. 낮에는 봄이었는데 해진 다음에는 얼어죽을 겨울 날씨로 돌아갔어.
그녀: 그럼 내가 죽을 목숨 구해준 거네.
나: 그렇지. 니가 내 목숨 구해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뭐.
그녀: 그걸 알고는 있네.
나: 알지. 그걸 어떻게 모르겠나. 다만 문학하고 예술하는 사람들에게는 죽고 사는게 중요한 문제는 아닐 뿐이지. 우리한테는 좋은 작품을 쓰고 못쓰고가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해서 목숨을 가끔 우습게 본다는게 문제지 뭐.

그녀: 너, 내 험담 많이 하고 다녔지?
나: 그랬지.
그녀: 그래서 내가 너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좀 그래. 다들 나에 대한 인상이 안 좋을 거 아냐.
나: 그건 그렇질 않은 거 같아. 내가 네 험담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너가 괜찮은 여자가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어.
그녀: 어떻게 험담을 했길레..
나: 내가 너의 말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더니, 가령 예를 들자면 어떤 말이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내가 오늘 같이 추운 날 내가 집을 나서면 너가 날씨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한다라고 했어. 그러면 사람들은 그건 당신 걱정해서 해주는 말인데 왜 그런 말을 참을 수가 없냐고 물으며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곤 했어. 그래서 나는 그런 게 내가 원한 말이 아니라면서 내가 원하는 말은 오늘 같은 날 그렇게 입고 나가면 얼어죽는다, 그래도 걱정말고 나가서 얼어죽어도 된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같이 산 정리를 생각해서 장례는 치뤄줄께 라고 하는게 내가 원하는 언어였어라고 말을 했지.
(차가 속초보다 위쪽의 고성으로 올라가면서 쌀쌀한 날씨가 차속을 파고 들었다.)
그녀: 여기가 마침 얼어죽기 딱 좋은 날씨 같은데, 한 번 내려 볼래?
나: 내가 잘못 했습니다.

그녀: 사람들이 너가 왜 집을 나왔는지 많이 궁금하게 여겼을 거 같어.
나: 그랬지. 친구들이 왜 집을 나왔냐고 물어서, 너가 나보고 나가라고 소리를 쳤다고 했어.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김가인데 왜 나보고 나가라고 하는지 정말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지.
(그때 차가 식당 홍가네 앞을 지나고 있었다.)
나: 엇, 홍가네네. 니가 내게 나가라고 소리친 일은 저 집이 식당 간판을 바꿔야 하는 일이었어.
(나가라고 소리칠 때는 그녀의 말에 분노가 잔뜩 묻어 있었는데 그때 얘기를 듣던 그녀가 홍가네 앞을 지나칠 때는 내 말을 듣고 푸핫하고 웃음을 뱉었다.)

그녀가 차를 몰고,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그녀의 차를 타고 속초에서 고성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의 기억에 있는 아름다운 바닷가의 길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고성이 가까워 오면서 내가 말했다.
나: 시끄럽지는 않겠지?
그녀: 왜?
나: 지금 고성으로 가고 있잖어.
그녀: 너, 지금도 그런 얘기하면 웃어주는 여자들이 있는 거지?
나: 있긴 있어. 그런데 웃고나선 웃어준 거를 무지 억울해 해. 아이씨,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웃었어.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안되는데 방심하다가 또 웃고 말았어라면서 억울해 하더라고.
그녀: 그 심정 정말 이해가 간다. 나도 조금 전에 니 얘기에 피식하고 웃었는데 그것도 지금 무지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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