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근 맛과 시킨 맛

Photo by Kim Dong Won
2024년 6월 25일 서울 천호동에서

그녀는 담그고 나는 시킨다. 그녀는 물김치를 담그고 나는 오이소박이를 시킨다. 그녀는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물김치를 담그는데 필요한 온갖 것들을 사오고 나는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뒤지며 온갖 오이소박이를 살펴보다 그중 시킬 것을 하나 고른다. 그녀가 담글 때는 재료를 다듬을 때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고 내가 시키면 포장한 상자와 온갖 비닐이 쓰레기로 나온다. 그녀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돈을 아끼고 나는 돈을 들여 시간과 노력을 아낀다. 돈과 시간, 노력이 우리 집에서 남아 돌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우리가 아끼는 그 모든 것이 우리 집에선 항상 부족하다. 그녀가 담근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집만의 맛이고 내가 시킨 맛은 그것을 시킨 세상의 수많은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맛이다. 그녀가 담근 맛은 우리를 길들이고, 내가 시킨 맛은 전혀 우리를 길들이지 못한다. 그녀의 담근 맛에 길든 우리는 그녀가 해준 맛이 아니면 맛의 만족을 모르게 되고, 내가 시킨 맛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해 언제나 한 번 식탁에 오르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며 끊임없이 다른 맛으로 바뀐다. 한 때 식탁 위에는 담근 맛 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담근 맛과 시킨 맛이 식탁에 나란히 놓이는 세상이다. 그녀는 시킨 것이 맛이 없으니 담가서 먹자며 담그고, 나는 담그는 것이 힘이 들테니 그냥 시켜 먹자며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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