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는 모두 열네 곳이었다. 나갈 곳은 많았다. 하지만 내가 나가야 할 곳은 1번 출구였다. 나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숫자들 속에서 숫자 1을 부지런히 찾아내 1번 출구를 찾아간다. 그 숫자가 어디로 향하는 지는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방향을 알고 지하철을 탄 것이 아니라 1번 출구라는 숫자만 지정 받은 채 열차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열네 개의 숫자 속에 뒤섞여 있던 숫자 1은 2와 13, 14만 곁에 두고 나란히 서면서 그 혼잡스러움을 줄이더니 결국은 2하고만 나란히 서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나는 오른쪽으로 가라는 2를 버리고 화살표로 새겨 왼쪽을 가리키고 있는 1번 출구로 나서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곳이 1의 세상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출구를 나서는 내게 1은 그제서야 예술의 전당 방면이라는 방향을 손에 쥐어 주었다. 숫자를 따라가서 방향을 얻은 지하철의 세상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나은 운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이나 수익의 숫자를 따라가다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들었다. 다행이 아직 그날의 1번 출구에선 그런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 출구에는 여전히 방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