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2월 28일 서울의 우리 집에서
고양이가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의 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고양이의 발과 몸의 일부만이 밖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 그런 부족을 불러온다. 이 때문에 말에 뭔가 이불을 끌어들여야 할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지금 고양이가 이불을 덮고 자는 중도 아니다. 그 말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고양이의 잠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고양이는 지금 이불에 묻혀서 자는 중이다. 이제는 말이 고양이의 잠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러면 이불을 덮고 자는 잠은 어떤 경우인 것일까. 이불을 덮다는 말에 어울리려면 잠을 잘 때 머리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이불이 너무 작아서 몸의 일부분만 겨우 덮을 정도가 되면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 아니라 이불로 가리고 잔다로 말이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 아무 것도 안보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다는 말이 더 적당해진다. 고양이였다면 이불 속을 파고 들어갔다가 될 수 있다. 반쯤만 덮고 자면 덮은 듯 만듯 자고 있는 잠이 된다. 고양이는 어쩌다 이불에 묻혀 잠을 자며 내게 잠과 이불 사이의 역학 관계가 말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잠과 이불과의 관계가 말들을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사실은 세상이 온통 그럴 것이다. 잘 살피면 세상의 말이 풍부해진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우리들이 끊임없이 말들을 캐낼 수 있는 풍부한 말들의 광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