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성곽의 바깥쪽,
나무 한그루가 그림자를 내세워
성곽을 타고 위로 오릅니다.
나무는 한 자리에 붙박혀 있지만
그림자를 내세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하루를 놉니다.
아마 오전엔 성곽이 아니라
성곽의 아래쪽 숲으로 그림자를 뻗어
바삭바삭하게 마른 낙엽의 냄새를 킁킁 거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여름 잎이 무성할 땐, 사실 그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빛이 쨍할 때면 잎들의 그림자가 우수수 아래로 떨어져
온통 숲을 자신들 그림자로 뒤덮고 말거든요.
그럼 어디에서도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들이밀 틈새를 찾아내긴 어렵습니다.
겨울엔 잎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 가지 사이가 비면서
나뭇가지의 그림자도 길을 선명하게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다 싶어 나무는 오전엔 숲속으로 길게 그림자를 눕히고
지난 가을, 숲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가을 냄새를 맡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오후엔 고개를 정반대로 돌려 성곽을 넘봅니다.
아마도 처음엔 발돋움을 해도 성곽의 절반쯤에도 못미쳤을게 뻔합니다.
그렇지만 오후 시간이 점점 깊어지면
나무 그림자가 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햇볕이 등을 받쳐줍니다.
그럼 이제 나무 그림자는 고개를 길게 빼고,
성의 너머까지 넘볼 수 있게 됩니다.
나무는 붙박혀 있지만
그림자를 내세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하루를 놉니다.
그 곁에서 나도 나무 그림자를 지켜보며 함께 놀다가 왔습니다.
8 thoughts on “나무 그림자”
‘나무가 그림자를 내세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 하루를 논다’는 말,
사진을 접하지 않았다면 뭔 말인가 했을거예요.
빛과 그림자의 움직임이 참 크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아무리 알아도, 이런 표현은 너무 멋지고 실감나는거 아니예요? ^^
사실은 나무가 몸안으로 그림자를 집어넣는다고 했던 오규원의 시를 생각하면서 슬쩍 변주하여 도용한 건데…
맨끝에서 밝히려고 했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어요.
시를 읽고 있노라면 정말 세상이 살아있는 이미지의 세상이구나 하는 걸 많이 느껴요.
요즘 특히 세상의 모습이 그런 느낌으로 자주 눈에 들어오네요.
나무그림자가 월담금지 푯말을 못 봤나봐요. ㅋㅋ
봤기야 봤겠지만 나무는 학교 다닌 적이 없어서… ㅋㅋ
남편의 그림자가 되고싶단 생각 자주했어요.
이젠 남편 그림자옆에 제 그림자도 똑같이 걷게해주고싶네요.
영원한 동행, 영원한동지 우리 웬수덩거리..ㅋㅋ
같이 걸어가면서 즐겁게 노는 것도 잊지 마셔요.^^
근데 동원님 발자국은 왜 안남나요? 궁금해요.
다른 분들은 필명 뜨니까 클릭하면 되는데
동원님은 즐겨찾기에서 찾아야하거든요.
그건 제가 오블로 로그인을 안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 블로그가 오블이 아니거든요. 오블은 오블 사람들이 로그인을 했을 때만 발자국이 남아요. 네이버나 다음도 같은 네이버나 다음에 가입한 사람들끼리만 다녀간 걸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댓글 남기고 꼭 주소를 적는 거예요. 흔적 남기느라고…
저는 독립 블로그라 어디를 방문해도 제가 흔적을 남기기 전에는 흔적이 안남고, 또 누가 제 블로그를 방문해도 댓글을 남기지 않으면 방문한 걸 저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누가 다녀가도 댓글을 안남기면 다녀갔는지 말았는지 알 수가 없답니다.
오블끼리는 댓글을 안남겨도 그걸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지만요. 그게 좋은 점이기도 하구요.
저도 궁금해요. 방문객은 많은 데 도대체 누가 다녀가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