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를 때면 눈은 바람처럼 가볍다.
산꼭대기가 눈에 보이면
몸뚱이를 이곳에 팽개쳐두고
어느새 그곳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발은 무겁다.
산꼭대기가 코앞에 다가섰을 때쯤이면 더더욱 무겁다.
그렇지만 발은 계단 턱 몇 개를 오를 때도
절대로 몸뚱이를 그 아래 팽개치는 법이 없다.
발은 언제나 몸뚱이를 이끌고 함께 가고, 또 함께 오른다.
가끔 눈은 산꼭대기가 보이면
저 혼자 산꼭대기까지 훌쩍 다녀오고 만다.
그런 날이면 발은 눈만 산꼭대기로 보내고
몸뚱이와 함께 산아래 앉아있다가
힘든 몸을 이끌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날은 산을 올랐다는 눈의 즐거움보다
눈앞에 두고 산꼭대기를 접어야 했던 발의 아쉬움이 더 크다.
산꼭대기에 관한한
우린 아무리 눈이 산꼭대기를 수십 번 올라도
그것을 산에 올랐다고 손에 꼽지 않는다.
우린 단 한번이라고 해도 발의 걸음만
손에 꼽아 산꼭대기에 오른 것으로 친다.
눈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산꼭대기로 날아오를 수 있는 건
기대와 희망의 날개를 가졌기 때문이다.
눈은 눈에 보이면 이미 다 오른 듯이 기대를 품고 희망을 갖는다.
발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은
삶이 현실을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발은 그래서 현실에서 절대로 발을 빼는 법이 없다.
눈은 이상주의자이고,
발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가끔 그 둘이 함께 산꼭대기에 오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보면
눈이 산꼭대기에 먼저 올라 발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다 왔어, 힘내!”
발은 그게 뻔한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번번히 그 말에 힘을 낸다.
산꼭대기는 눈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올라가보면 아득하다.
항상 발이 몸뚱이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것 같지만
둘이 함께 산꼭대기에 오르는 날엔
사실은 눈이 산꼭대기에 먼저 올라 발을 이끌어준다, 바로 그 산꼭대기로.
이상하게 발은 그런 날,
눈이 내민 손을 놓지 않고 산꼭대기까지 힘을 낸다.
우리는 그렇게 눈으로 끌어주고 발로 밀어주며
우리의 몸뚱이와 함께 산에 오른다.
그런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눈도 즐겁고, 발도 즐겁다.
5 thoughts on “산꼭대기 오를 때”
눈도 즐겁고 발도 즐거우면 좋겠는데
겨울 산행은 추워서 문밖을 나가기가 쉽지 않네요.
제 티스토리 블로그는 갑자기 먹통이 됐네요.
하얗게 변했습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것 같아 그리 나쁘지는 않네요.
저도 놀러갔다가 이게 뭔 일인가 했어요.
눈이 상당히 많이 왔나 봐요. ㅋㅋ
감사합니다.
들어가 보니 스킨이 다 지워져 버렸네요.
지운 기억이 없는데 뭘 꼼지락거렸는지 하얗게 변해 있더군요.
도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발과 눈이 함께 있는 모양이야.
발이 헛디디면 넘어지고, 눈이 잘 못보면 방향을 잃고…
거 참, 뻔한 얘기같은데 글로 읽으면 새로운 것 같은게 이상하네~^^
위험이 크면 오히려 발이 앞을 서는 경우도 있지.
살얼음이 얼면 발을 먼저 앞으로 뻗어서 톡톡 건드려 보거든.
그때면 눈은 발 뒤로 움추리고 있지.
오규원의 시에선 종종 우리의 신체 부위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눈과 다리, 발, 팔이 몸에 복속되어 있는게 아니라 다들 독립하여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이 글도 암암리에 오규원 선생님에게서 영향을 받았네, 그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