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위

Photo by Kim Dong Won
2007년 8월 21일 강원도 영월 문곡리 내 고향에서


우리는 그곳을 빛바위라 불렀다.
학교에서 자기 마을의 전설을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냈을 때
내 친구 윤식이는, 아마도 자신의 할머니에게 들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
그곳이 왜 빛바위라 불리게 되었는지 신이나서 내게 말했다.
윤식이는 이렇게 말했었다.
“어느 날 산이 쩍 갈라지면서 빛이 번쩍했데.
그래서 빛바위가 된 거래.”
그 얘기 이외에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우린 그곳을 항상 빛바위라 부르면서
왜 그곳이 빛바위라 불리는지 아무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난 그때 왜 윤식이의 그 신나는 발견에 박수를 쳐주지 않은 것일까.
나는 오히려 그의 얘기에 초를 치고 말았다.
“야, 그건 너무 짧지 않냐?
우리 동네에 산이 하나 있습니다.
그 산이 어느 날 쩍 갈라지면서 빛이 번쩍 했습니다.
그 뒤로 그곳을 빛바위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세 줄밖에 안되잖아.”
윤식이는 내 말에 갑자기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좀 후회스럽다.
그때 윤식이의 그 놀라운 발견에 박수를 쳐줄 걸.
난 머리가 너무 영악해서
전설로 포장을 해서 내놓기엔
그 얘기가 너무 짧고 전후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내게 놀라운 얘기였음에 분명하다.
아직까지 그날의 얘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그 빛바위 앞에 가곤 한다.
지금은 많이 윤곽이 흐려졌지만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빛바위의 절벽은 선명하게 거북 무늬를 하고 있었다.
그 무늬만으로 보면 그것은 거대한 거북의 등이었다.
경사가 급하긴 했지만 어린 우리들은
쉽게 그 거북등을 타고 그곳을 기어올라가곤 했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그곳에서 즐기던 우리들의 놀이였다.
나도 그 절벽의 턱밑까지 기어 올라간 적이 있었다.
항상 빛을 가득안고 있는 곳이어서
사실 그곳을 빛바위라 부르는 것은
굳이 전설에 기대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올해 고향에 내려간 길에 그곳에 갔더니
그곳이 예전에는 바다였으며,
그런 지형을 가리켜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라고 한다는
아주 어렵기 짝이 없는 안내문이 서 있었다.
그 안내문은 그곳이 천연기념물 제413호로 지적되었음을 함께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내문은 참 멋없어 보였다.
내 친구 윤식이가 왜 그곳을 빛바위라 부르는지 알아냈던
그 어느 날의 전설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면 그곳엔 그 동네에서 자란 우리들의 어린 시절 기억이 고스란이 담겨있다.
사실 우리는 그곳을 자주 찾지 않았다.
우리가 그곳을 찾는 것은 큰물이 났을 때였다.
그때면 우리들은 아래쪽의 물을 버리고 그곳까지 올라갔다.
그 이유는 개울의 한가운데 서 있는 바위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바위를 싸고 도는 물의 소용돌이를 과감하게 뚫고
그 바위로 올라가는 것을 큰 재미로 삼았다.
물론 물살이 심해 밀려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위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개가 어떻게든 그 바위의 한쪽 모서리를 잡고
그 바위 위로 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그 바위 위에서 급한 물살 위로 뛰어내렸다.
급한 물살을 헤치고 그 바위에 오르면 우리는 남자가 된 느낌이 역력했다.
우리는 그때는 남자는 모두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곳에 못오르면 그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물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그런 생각은 오래 전에 버렸다.
평상시 그곳엔 거의 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큰물이 났을 때만 그곳에 가서 놀곤 했었다.
그 바위는 지금은 절벽 가까이 몸을 붙이고 있지만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지금의 위치보다 상당히 위쪽에 있었다.
우리가 고향을 비운 사이에
물은 계속 그 바위를 아래로 밀어 지금의 절벽 가까운 위치까지 가져다 놓았다.
아마도 우리가 계속 고향을 지켰다면
물과 바위는 우리의 아이들과 놀았을 것이다.
같이 놀 아이들을 잃어버린 내 고향의 물은
이제는 바위밖에 놀 상대가 없다.
그것도 바위를 아래로 미는 놀이밖에 다른 놀이가 없다.
우리들을 소용돌이 속으로 휘감아 물좀 먹여주고 다시 바깥으로 내놓곤 했던,
그러다 우리의 발길질에 걷어 차여 바위 위로 올라가버린 우리들을
그저 손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재미난 우리들과의 놀이는 아득한 기억이 되어 버렸다.
어릴 때 우리는 저 바위를 물의 가운데 두고
큰물이 날 때마다 그렇게 물과 바위와 함께 놀았다.
빛바위엔 어린 날 내가 물과 바위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고,
또 윤식이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난 그곳에 가면 항상 윤식이가 생각나고
또 그곳에 가면 큰물이 났을 때 물과 함께 놀았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내게 그곳은 언제까지나 윤식이의 빛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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