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9일 수요일에 잠깐 전남의 고흥에 다녀왔습니다.
아는 사람이 어머님 상을 당해 내려간 길이었습니다.
하루만에 다녀온 일정이라
오고 가는데 들인 시간만 10시간이 넘는 것 같습니다.
일을 본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가던 길에
일행이 고흥의 바로 위쪽으로 있는 벌교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곳에서 일단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나는 거리 구경을 했습니다.
낯선 거리는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볼 것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하지만
사람 사는 건 사는 곳마다 조금씩 다르며,
그 조금씩 다른 문양으로 사람들은 그곳만의 삶을 그려냅니다.
벌교도 물론 벌교만의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새조개가 맛있으니 올라가는 길에 꼭 벌교에 들러
새조개를 먹고 가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조개가 가늘고 긴 세조개인지,
아니면 새가 잘 먹어서 새조개인지 궁금했습니다.
그 말대로 벌교에 들렀고,
일행과 함께 한 어물전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아저씨에게 말을 붙이니
새조개 하나를 집어들고 직접 까서 보여주십니다.
새조개는 까놓으면
그 안이 마치 새의 부리 모양 같다고 하여
새조개라 불린다고 합니다.
정말 부화를 기다리며 부리를 모으고 있는 새 같습니다.
그 옆의 큰 조개도 이름이 궁금했습니다.
아저씨는 그건 피꼬막이라 했습니다.
안에 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새조개는 샀는데 피꼬막은 사질 않았습니다.
벌교의 그 유명한 꼬막입니다.
상점마다 넘치도록 쌓여있더군요.
아저씨는 꼬막을 참꼬막과 새꼬막으로 나누어 알려주었고,
양념없이 그냥 꼬막만 먹으려면 참꼬막이고,
양념해서 먹기에는 새꼬막이 좋다고 했습니다.
요건 꼴뚜기입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봐도 무슨 연유로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을 시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즉석에서 한마리 먹게도 해줍니다.
보기에 맛있어 보이고 생긴 것도 깔끔한데,
왜 그런 속담을 억울한 누명처럼 뒤집어 쓴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아저씨는 꼴뚜기가 먹물을 갈기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먹물을 갈기거나 그걸 제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으면
보기에 좀 거시기하다고 합니다.
낯선 거리에선 얘기를 섞으면서 얻어듣게 되는 대답들이 큰 즐거움입니다.
벌교는 따로 시장이 있기도 했지만
차다니는 길가를 따라 좌판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Drive-in market, 아니 Drive-through market인 셈입니다.
이런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시장에서 어물을 산 뒤
근처의 식당으로 가져가서 조리를 부탁하면 된다고 합니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먹을 것은 사가지고 식당으로 가야 하는가 봅니다.
가는 길에 ‘땡겨호프’라는 간판의 맥주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맥주 생각이 땡겼지만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더군요.
결국 맥주 땡기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거리를 걸어봅니다.
정류장 풍경입니다.
어른들 사이엔 기다림과 얘기가 있는 것 같고,
학생 하나는 열심히 문자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번화한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벌교역을 사이에 두고 흘러가고 있는 길은
저 끝에서 이 끝을 그냥 한번의 시선으로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 불이 들어오는 저녁 시간인데도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식당으로 돌아오니 막 꼬막이 나왔더군요.
매번 입벌린 꼬막만 보았는데
이곳 벌교의 꼬막은 죄다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입을 벌린 꼬막은 제대로 삶은 꼬막이 아니라 잘못 삶은 꼬막이라고 합니다.
입을 벌릴 때까지 삶게 되면 그 안의 액이 다 흘러나오기 때문에
더운 물에 살짝 씻어내듯이 건져낸다고 합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일일히 입을 벌리고 먹어야 합니다.
근데 맛있긴 맛있었습니다.
씨알이 굵은 것은 일찍 동이 나고
나중에는 자잘한 것들만 남았습니다.
작은 것들은 모두 내 차지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작은 것이 더 맛있더군요.
일보러 온 길에 잠깐 들린 거리였지만
그 짧은 시간에 벌교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습니다.
세상은 그냥 멀리 걸음하여
사람사는 곳을 한번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추억이 됩니다.
12 thoughts on “전남의 벌교 거리를 잠깐 걷다”
새조개 샤브샤브는 정말 맛있습니다.
정신없이 먹다가 계산할 때 정신이 번쩍 들곤합니다.
아마 요맘때가 제일 먹기 좋은 듯 싶나봅니다.
예전 월출산에 갔을 때 영암에서 먹었던 짱뚱어탕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네요.
역시 전라도는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본전은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길가에서 골목을 들어가 찾아간 식당이었는데
무슨 회관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새조개는 데치는 것도 기술인가 봅니다.
벌교에선 정말 맛나게 데쳐서 주더군요.
출출한 새벽에 괜히 들어왔네요.
꼬막 너무 먹고싶어요.
해남 갈 때 항상 벌교를 지나쳐갔는데…
꼬막에도 종류가 있군요.^^
땡겨호프 이름 참 재밌습니다.
우리동네엔 ‘버르장머리’라는 미용실이 있어요.ㅎㅎ
전에 순천 여행할 때는
여름이 막 끝나가던 시절이라 꼬막을 권하질 않더라구요.
그때는 짱뚱어탕을 먹었죠.
이번에는 제철에 가서 꼬막을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정감있는 풍경이네요~ 사진 잘보고 갑니다.
우리의 시골이 주는 따뜻함이죠.
정감이란 현대적 백화점에선 어디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만의 훈기 같아요.
ㅎㅎ 저는 이런데 가거나 먹으러 가게 되면 사진도 찍고 그래야지 했다가 와~~워~~하면서 멍하게 있기 일쑤고 먹으러가게 되면 먹느라 사진을 종종 놓치고하지요~
멍하게 있다가 어깨에 카메라를 매고온걸 집에 갈때 안답니다…-_-;;;
바둑이의 한마디…”멍~!”
생선가게 아저씨 아줌씨들의 입담이나 애드리브는 정말 예능프로그램 저리가랍니다~ㅎㅎ
아 저도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옆사람이 사진은 안찍고 먹기만 하냐고 해서 그때서야 찍었다는…
새조개는 특히나 어찌나 맛있는지요.
남해로 며칠간 여행가고 시포요.
특히 예전에 카메라 없던 시절에 갔던 완도에 다시 한번 가봤으면 좋겠어요.
울창한 숲을 낀 바닷가가 있었는데 그 숲이 그대로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마쟈요.
입 다물고 있는 꼬막이 잘 삶은 거랍니다.
요즘~
젤 맛날 때이기도 하구요.
껍데기 반만 벗겨 반 남은 건 양념장 만들어서
꼬막위에 골고루 묻혀 드심 맛나요.
새조개는 그 맛이 일품…
울 집에서 이십여분 걸리는 벌교….
싱싱한 먹거리가 넘치지요.
오고가는 시간이 열시간이라니~
참 …..~
설이 겁나 멀긴 하네요.
새조개도 실컷먹고, 꼬막도 열심히 먹었죠.
보통 서울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속에 뻘의 흙이 가득든 것인데 벌교에 가니 전혀 그렇질 않더군요.
시간이 없어 바다도 못보고 온 것이 섭섭했어요.
와,
큰 댁이 어촌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꼬막 외에는
자주 들리는 대형마트에 조리된 꼬막 밖에 보지 못했는데…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군요. 새조개는 정말 예쁘구요.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의 발걸음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으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어 참으로 부럽습니다.
간접적으로나마 이렇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시는군요~ ^^
농촌이나 어촌이 말만 섞어도 참 많은 것을 얻게 되요.
요즘은 카메라들고 있으면 먼저 말을 붙이기도 하더군요.
사는 얘기들으면 그게 곧 드라마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