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서울에 눈에 내렸습니다.
서울뿐만이 아니라 거의 전국에 다 눈이 내린 것 같습니다.
아침에 그녀가 눈소식을 전했을 때
곧바로 강변터미널로 나가 오대산쯤으로 가고 싶었지만
하루에 다녀오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10시쯤 시내버스를 타고 마천동으로 가
남한산성을 오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마른 잎들이 모두 눈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눈이 내릴 때면
손을 크게 벌려 눈을 받으려 하곤 하죠.
그럼 지난 가을에 잎들을 지상으로 떨구지 않고 둔 것은
우리처럼 손을 벌려 내리는 눈을 받으려는 생각에서 였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가을부터 손벌리고 있었으니
손이 무척이나 시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늘 눈을 한움큼 받아쥐었으니 원은 풀었습니다.
나뭇가지에 얹힌 눈은
마치 업혀있는 느낌입니다.
다같이 체온을 나누게 되지만
업혀있을 때와 안았을 때는 약간 느낌의 차이가 있습니다.
눈은 나뭇가지로 내려앉을 때
나무를 안는다기 보다 가지를 등삼아 그 뒤로 업히는 느낌입니다.
마치 어린애처럼.
사람들이 쉬어가던 긴 나무 의자도
오늘은 눈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눈은 의자에 앉질 않고 그 위에 엎드립니다.
눈은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와서 세상에 엎드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눈이 왔을 때 느낌이 따뜻한가 봅니다.
기둥을 단단히 움켜쥔 밧줄 위에도
오늘은 하얀 눈이 쌓였습니다.
그 하얀 눈의 촉감에
밧줄이 손아귀에서 한시도 놓지 않았던 힘을 잠시 빼둔 느낌입니다.
바위 위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바위가 든든한 등을 내주고,
눈은 그 바위 위에 엎드려 있습니다.
차가운 체온도 서로 나누면 따뜻한 것일까요.
어쨌거나 느낌은 따뜻합니다.
조금 산을 오르다 보니 안개가 밀려옵니다.
안개는 내가 올라가야할 언덕을 넘어
내 앞으로 밀려 내려옵니다.
함성하나 없이, 그러나 순식간에 내 앞의 산을 정복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한발을 내디디면 한발을 뒤로 물러줍니다.
내 앞을 빈틈없이 정복했지만
내가 밀고 올라가면 또 대책없이 자꾸만 뒤로 물러납니다.
난 그 재미에 안개가 앞을 막아도
자꾸만 안개를 밀고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안개낀 산을 오르면
밀고 당기는 대결이 있는게 아니라
내가 밀면 안개가 그만큼 뒤를 물러주는 재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나는 여전히 안개속입니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안개에 흐릿하게 지워집니다.
먼저간 사람이 먼저 지워지고,
그나마 나중간 사람은
좀더 오랫동안 선명한 흔적을 고집할 수 있습니다.
안개는 누구나 쉽게 뚫고 가지만
그 반투명의 세상이 밀려들면 시선은 그다지 멀리가질 못합니다.
안개는 우리가 얼마든지 그 품을 파고들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러나 시선을 다른데로 돌리는 것은 허용하질 않습니다.
안개의 작은 물방울이 얼어붙어 만들어내는 눈꽃은
남한산성에서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작은 가지를 타고 하얀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오늘은 연주봉 옹성도 안개에 묻혔습니다.
안개가 희미하게 묻어버린 연주봉 옹성은 사람마저 뜸합니다.
높이를 갖고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볐는데
안개가 둘러싸자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별로 인기척이 없습니다.
연주봉 옹성의 바로 아래쪽엔 성곽에 창을 내두었습니다.
그 창으로 내다보니 오늘은 세상이 온통 하얗습니다.
안개의 세상입니다.
안개가 낀 날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안개와 바로 코앞에서 시선을 맞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안개가 낀 날은 세상을 보려들지 말고
산비탈을 한달음에 올라온 안개와 시선을 마주할 일입니다.
연주봉 옹성의 바로 아래쪽으로
항상 푸른 청춘을 자랑하던 소나무가
오늘은 졸지에 하얀 백발이 되었습니다.
강아지풀은 오늘 하얀 털모자를 하나씩 뒤집어 썼습니다.
털모자가 무거운지 머리가 눈밭까지 휘어집니다.
오늘은 강아지풀이 아니라 눈강아지라 불러야 할 듯 합니다.
아직 가을의 붉은 색을 다 버리지 않은 단풍잎 하나가
눈밭에 몸을 눕히고 있었습니다.
가을 바람을 견디면서 지금까지 가지를 붙들고 버틴 것은
바로 이 순백의 느낌을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눈밭에 누운 단풍잎 위로 눈발이 덮이고 있었습니다.
탁자 위에도 눈이고,
주변을 둘러싼 의자에도 눈입니다.
가을엔 저 자리에서 붉고 노란 색의 대화가 있었는데
오늘은 저 자리에 색을 모두 빼버린 순백의 대화가 있습니다.
눈이 계속 내려 시야가 뿌였습니다.
눈이 오면 나무들은 제 윤곽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눈이 나무 줄기를 따라 얹히면서
비슷한 색의 뒷배경에 묻혔던 나뭇가지의 윤곽을
하얗게 꺼내주기 때문입니다.
눈은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라
어떨 때 보면 세상의 윤곽을 선명하게 꺼내주기도 합니다.
날씨가 푸근한가 봅니다.
세워놓은 차의 앞유리에 내려앉은 눈이 이내 녹아내립니다.
눈이 녹으면 그렇게 물이 됩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눈이 물로 건너가고
날씨가 차면 물이 눈으로 건너갑니다.
물과 눈은 날씨에 따라 그렇게 느낌이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오가며 삽니다.
바깥에선 눈이 내리고,
차창에선 물로 건너간 눈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한해내내 설산을 머리에 이고 사는 희말라야의 고원으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계곡을 흘러 내리는 물은 만나면
우리가 여름날 계곡에서 만나는 물과는 느낌이 다를 것 같습니다.
그건 눈이 계곡 아래쪽에서 올라온 온기를 타고
물로 건너가면서 생긴 물일 테니까요.
물도 원래부터 물이었던 물이 있고,
그렇게 눈이 물로 건너가며 생기는 물이 있습니다.
눈이 차창이나 길에서 녹아 물로 건너갔을 때는 좀 질퍽거리는 느낌이 있어
물로 건너간 눈이 안스럽곤 합니다.
희말라야의 고원으로 가,
어딘가 계곡으로 자리를 잡고
그런 안스럼없이 물로 건너가는 눈의 노래를 듣고 싶습니다.
22 thoughts on “눈내린 남한산성을 오르다”
제가 가는 산책 코스네요….비오는날 눈오는날은 안가는데 눈오는날 꼭 한번 가봐야겠네요….^^~
날씨따라 산의 풍경이 다르니, 비오는 날, 눈오는 날, 모두 한번씩 가보시길.
눈이 내린 남한산성을 보니까 아주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조선시대 그 당시의 느낌이 나는 것 같습니다.
연주봉을 보니 여름과는 다르게 조금 슬퍼 보입니다.
눈올 때 외적과 대치하고 있었으면 정말 슬펐을 듯.
모처럼 깊은 감상에 빠졌습니다.
글이란 마음과 영혼까지 뻬앗아 갑니다.
넘치는 말씀, 그저 고맙습니다.
하하하
사진두 재밌고
글도 재밌고,
풀어 쓴 마음이 하얗습니다.
여기서는 안 보이는 곳,
둘러둘러 보여주시는 대로,
따라 다니며 보는 기분이 좋습니다.
오래 전에 한라산 거의 꼭데기에 다달았을 때,
갑자기 몰려든 안개-, 얼마나 짙던지요.
갑자기 아무 것도 안보이고,
내 안경만 불쑥 나타나 보이던 겁니다. 하하하
고개를 숙이니 가슴부터 안보 입니다. 팔도– 다리도–
어디선가 저 밑에서 다급하게 들려온 소리,
“꼼짝 말앗~~~~~~~~~~~~~~~~!!!!”
안갯 속에 — 덜렁 ‘머리통 하나’ 떠 있으니–
숨을 쉬고 있지 않았던 기억 입니다.
하하하
목소리(웃으며)
와, 그런 짙은 안개가 다 있어요?
저는 한 1m 정도 앞이 안보이는 안개는 대관령에서 한번 경험했죠.
머리만 안개속을 둥둥 떠다닌 경험이라…
생각만해도 재미나네요.
잘 구경하고
갑니다
평안밤 밤 보네셔요
봄날.
봄날님도 즐거운 밤이 되시길.
마치 고향의 산에 오르는 듯한느낌 이네요.
신선이 따로 없네요.
어제 속초를 갔다가 왔는데 담아 오지못함을 대신
즐기는 기분입니다.
가장아름다움은 자연에 있네.
남한산성이 낱으막해서 실제로도 고향의 산 같습니다.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곤 하죠.
사진…. 넘 멋져서….. 넘 죄송하게도 퍼 갑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세요~~
들러주신 것 고맙습니다.
여섯번째 사진 정말 멋지군요.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중하게 간직하세요.
녜, 감사합니다.
몇번 올랐던 길인데 안개와 눈이 그렇게 만들어주더군요.
안개와 눈에게 반반씩 감사드려야 할 듯 합니다.
좋겠네요…대전은 그날 하루종일 비만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남쪽도 눈이 많이 왔나 했더니 남쪽은 비였군요.
서울도 다음 날 눈이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오겡끼데쓰까……..?
러브레터…다시 보고 싶은데~
전………….겨울이면…혹은..눈오면………
생각나는 것
하나는………….
이 영화다.
오랫동안 영화관에서 근무한 경력??ㅎ
그 때문인지……………
영화 속 한장면이 이런 사진이나 노래를 듣노라면(러브레터 오리지널 사운드 트렉)
필이 더 꼿힌다.
남쪽나라는 눈 구경…
아흥………..힘들당.
즐감했어요^^*
언젠가 물빠진 순천만에 하얗게 눈이 덮인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름답더군요.
남쪽은 충청도만 내려가도 눈이 내리고 거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다 녹아버리는 것 같았어요.
이번에는 강원도에 엄청 눈이 많이 왔다고 하는데 강원도를 한번 가던가 해야 겠어요.
안개가 밀려오는 눈 덮인 숲의 색이 정말 멋지네요.
6.7번째 사진, 실물보다 사진으로 더 멋져보이는 모습일거 같아요.
눈오는 날, 부지런히 다녀오셨군요.
담에 눈오는 날엔 꼭 가봐야할텐데…
안개가 밀려오니까 숲이 참 멋지더라구요.
사람들 많이 다니는 길을 비켜나서 갔는데
그래서 더 멋진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눈 때문에 길이 하얗게 변한 것도 좋은 풍경에 크게 한몫했던 것 같구요.
원래는 눈꽃 사진이 가장 좋지 않을까 했는데
초점을 잡는데 실패를 해서
가장 좋았던 곳의 사진은 원하는 대로 나오질 않았어요.
8시 정도에 검단산을 올라가시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좀 힘들긴 하겠네요.
8시에 올라가려면 6, 7시에 산아래서 출발을 해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