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과 태백산은 높기는 하지만
산행을 시작하는 지점이 어디냐에 따라
산을 즐겨타는 사람에겐 많이 싱거울 수 있습니다.
차로 한참을 올라간 뒤에 산을 오를 수 있는 곳이 있거든요.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거쳐 비로봉으로 가는 등산로도
그다지 어렵지 않고, 또 멀지도 않습니다.
난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쉽고 수월한 길로 다닙니다.
1월 15일 화요일에 오대산을 오르는 내 걸음도 그 수월한 길로 갔습니다.
오늘은 적멸보궁에서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까지 갑니다.
종종 좋은 풍경을 얻기 위해
등산로를 잠깐 벗어나곤 합니다.
발이 푹푹 빠지더군요.
청바지라 바지 밑자락으로 눈이 파고듭니다.
멀리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에 청바지입고 산에 오르는 건
아무래도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그 용이란게
눈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백룡은 아닐까요?
근데 이게 어째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가늘어집니까?
승천하려면 위쪽이 머리여야 하는데 말이죠.
길옆에 누워있는 나무 위로 눈이 쌓여있습니다.
두께가 보통이 아닙니다.
많이 오긴 많이 왔습니다.
나무 위에 엎드린 눈이 스르르 녹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몸을 포갰는데 따뜻하지 않을 수 있나요.
눈이 실수한 거예요.
나무가 촉촉히 젖고
그 물을 받아먹으며 나무의 아래쪽으로는 이끼가 자랍니다.
갓떨어진 단풍잎 하나가 눈밭에 누웠습니다.
눈밭에 누운 단풍잎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처럼 희디흰 눈밭은 쉽게 보기 어렵습니다.
눈밭이 곰보가 되었습니다.
나무 위에 얹혀있던 눈이 녹아서 떨어지면서
눈밭에 구멍을 숭숭 냈거든요.
녹아 떨어지는 눈은 아마 추락하면서도 아무 걱정이 없었을 거예요.
아래쪽이 푸근한 눈밭이란 걸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나무가 나무 사이로 날렵하게 빠져나가고
그 나무를 타고 또 눈이 날렵하게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입니다.
나무가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눕고 싶었는지 한쪽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옆의 나무에게 의지하고 말았는데
옆나무가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옆의 나무가 팔배게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저러다 힘들면 내려놓고 말겠지요.
비로봉을 눈앞에 두고 산을 내려가는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잠깐 눈길을 미끄럼타고 내려가면서 깔깔 웃으십니다.
스님들의 웃음에는 티끌이 하나도 섞여있질 않은 느낌입니다.
한장 찍고 싶었으나 그냥 참고 있었습니다.
적멸보궁 올라가는 계단에서 중간쯤에 스님 세 분이 서 있길래
스님을 포함시켜 구도를 잡았더니 손사래를 치더군요.
싫다는 사람은 굳이 찍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때 그만 마음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굳어진 마음이 좋은 장면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조심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님들 중 한 분이
“좋은 카메라 가졌는데 이 재미난 장면을 왜 하나 안찍냐”고 하십니다.
이게 또 왠 횡재인가 싶어서 냉큼 내려가는 모습을 한 장 찍어둡니다.
이번 스님들께선 내려가다 말고 돌아서서
그 맑은 웃음까지 한번 다시 보여주고 가십니다.
“우리는 산아래 월정사의 지장암에 살아요” 하고 말해주십니다.
하얀 눈이 스님의 웃음을 닮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새 한마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꾸 나를 따릅니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 먹을 것을 구하는 눈치입니다.
적멸보궁에서 새모이를 사지 않은 것이 은근히 후회가 됩니다.
바로 코앞의 나무에서 포즈까지 취해주었으나
결국 모델료는 지급하질 못했습니다.
드디어 비로봉입니다.
나같이 걸음느린 사람이 세 시간에 올랐으니
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두 시간에 너끈하게 오를 곳입니다.
비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남쪽 방향의 풍경입니다.
정상에서 누군가가 야, 저기 강릉이 훤히 다 보인다고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뻥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른쪽으로 멀리 용평스키장으로 짐작되는 곳은 보였습니다.
북쪽도 보셔야죠.
어떤 사람이 남쪽을 보며 강릉이 보인다고 뻥을 치긴 했지만
그래도 북쪽을 보며 속초가 보인다고 뻥을 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대산은 올라오는 내내 거의 시계가 트이질 않더니
비로봉 정상에 올라서니 비로소 시계가 멀리까지 시원하게 트입니다.
오대산은 꼭 비로봉까지는 올라가고 봐야 겠습니다.
6 thoughts on “강원도 오대산 가는 길 2 – 적멸보궁에서 비로봉까지”
이궁 동원님 감기걸리면 어쩌시려고 청바지입고 산에가시나요?
눈오는 날엔 따신 솜바지가 최고인디…
체력좋으시네요. 산꼭대기까지 거뜬하게 오르시고..
여긴 당최 눈이 안내립니다.
산꼭대기엔 눈 내렸다는데 이 뚱띠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없고..
오늘 누군가 눈보러 가자고했는데
제가 구불구불한 길은 멀미를 잘해서 안갔어요.
동원님, 산에 자주 다니셔서 건강 유지하세요.
서울은 오늘도 눈왔어요.
강원도는 엄청 왔다네요.
제가 갔던 오대산에선 조난당한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등산복이 하도 비싸서 그냥 청바지 입고 다녀요.
솜바지 대신 내복은 입으니까 괜찮아요.
평등공주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기예요.
몇 해 전 가을쯤에 다녀 온 기억이 있습니다. 회사 산악동호회원과 같이 갔었는데 버스가 절 앞까지 올라 가던데 그 절이 상원사인가요? 그때는 그저 먹거리와 동동주만 탐하던 시절이라 절이름도 기억이 안나네요. 비로봉 표지석만 눈에 익네요.
가끔 산행을 하다보면 스님들을 만나곤 하는데 우린 등산화를 신고도 경사진 바위를 올라가기가 어려워 미끄러지곤 하는데 스님들은 고무신을 신고도 잘도 다니더군요. 지친 기색도 없이요.
녜, 그 절이 바로 상원사예요.
버스가 거기서 더이상 가질 않죠.
저도 고무신신고 산을 오르는 스님은 자주 봤어요.
그래도 겨울엔 털신을 신으셨더군요.
오대산 겨울도 좋네요~전 항상 여름전후로 가는데 산속에서는 나는 그 싱그러운 향기가 너무 좋아요~
오대산 부근이 참 볼만한 데가 많아요.
소금강도 이곳의 진고개에 있고, 사진찍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장전계곡도 이곳의 남쪽으로 있죠.
흠이라면 오대산을 빼고는 다들 시내버스가 너무 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