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녀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한 서적 코너 귀퉁이에 몸을 묻고
그녀가 보고 있는 책 이외엔 아무 것에도 시선을 주지 않고 있었다.
저러다 책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그 느낌은
슬쩍 지나치는 길이었는데도 내 시선을 잠시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나는 교보문고에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다가
종로의 반디앤루니스에 들렀으며,
그 다음엔 길건너편으로 건너가 딸아이가 다니는 학원에도 들렀다.
그리고 춘천 닭갈비를 맛있게 한다는 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으며,
그 다음엔 영풍문고로 가 다시 책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교보문고 광화문점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고,
거치는 김에 둘러본다고 그곳에서 다시 이 책 저 책을 뒤적였다.
처음 교보문고를 들리고 나서 시간은 이제 세 시간 정도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스치다 보니 그 여인이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의 바로 그 자세 그대로였다.
좀 가까이 가서 책을 고르는 척 하며 엿보았더니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그녀의 신발 한쪽은 앞이 모두 헐어 있었다.
책은 사서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읽어주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책은 그녀가 주인이 되어야 함이 분명했다.
그 책의 분명한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책장의 한쪽에서 옹색하게 몸을 움추린채 책을 보고 있었다.
나에게도 읽고 싶은 책들이 있었지만
그 책을 손에 넣으려면 몇번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책이 책의 주인, 그러니까 책을 읽어주는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드디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을 가져다 책장에 꽂고 책방을 나서려는데
책방 직원이 그녀를 부른다.
“손님, 잠깐만요.”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으며,
그녀의 시선에는 무슨 일인가를 묻는 의아한 눈길이 담겨있었다.
“읽던 책 갖고 가셔가죠.”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스친다.
책방 직원이 다시 말한다.
“아니, 그냥 가져가시면 되요. 그 책의 주인은 손님이 분명하니까요.”
난 그녀보다 일찍 책방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실 책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방이 책만 파는 곳이 아니라
가끔 책의 주인을 찾아주는 곳이 되기도 한다면
얼마나 세상이 신날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18 thoughts on “책의 주인”
상상만으로도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동원님의 상상은 따뜻하고, 가장 작은 것을 크고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으세요.
현실이 그럴 수 없을 때 이런 아름다운 상상은 여전한 현실에서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문학이며 예술이 그런 상상의 집합체일까요?
최근에 이원의 시를 읽다가 문학이란 길에 묶여있는 삶이 길을 벗어나려는 욕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길은 삶은 편안하게 해주긴 하지만 우리를 모두 그 길에 묶어 버려요. 그렇다고 길을 모조리 없앨 수도 없고… 그럴 때 길을 그대로 두고 길을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 문학적 상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요즘은 그런 현실을 벗어난 상상을 많이하고 있어요.
돈 주고 구입한 책이 펼쳐지지도 못하고 닫혀있는 것 보다…
학창 시절에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었기에 참으로
공감이 됩니다. 마지막 글귀와 같은 말을 하고싶군요. 언젠가-
언젠가는 말입니다.
사실은 저도 사다 놓고 읽지 않고 있는 책이 많아서 이런 얘기할 처지가 못되긴 하지만 좋은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되는 거니까요.
오호~좋게 볼수도 있지만 판매처에서 책을 주는 방식은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라는 반대적인 의도로 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책을 안주고 그냥 둔다면 다음에 또 와서 책만 읽고 갈테니까요~
속독법을 배우면 좋을것 같아요~ ㅋ
책을 준건 아닌데…
그냥 그건 저의 상상일 뿐.
서점에서 책을 준 것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서…
그런 일이 어찌 벌어지겠어요.
아~ 그렇군요~ ㅎㅎ
여자의 발목이 시려워 보인다…
맞아, 맨발이었어.
푸하하하~~~~~~~
정말이에요???
아콩,,?
우짜노~~
제가 실수한거네요.
이십대도 아닌 삼십대라니……
제 눈엔 우째 얼라로 보이는걸까요?ㅎ
눈을 다시 똥그랗게 뜨고 봅니다.
그데….여전히 십대 아이로 보이니 원~~
다시…………부비부비….??
아마,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을 거예요.
저 코너는 전문서적 코너라 십대들은 보기 힘든 곳이죠.
근데 옆모습은 십대로 보이기도 하네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보고픈 책들이 넘 많았는데………여러 형편상 읽지못해서
머릿속에서만 윙… 윙…맴돌고
알수없는 서러움의 상상에 나래만 펼쳐야만 했던 그 시절이요.
요즘은 인터넷에서 너도 나도 모든 걸 해결하려 하니…
아이 모습이 진지하고 신선하네요.
오, 아이 아니예요.
사진으로는 어려보이는가 봐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었어요.
난 그녀가 책방 주인 딸쯤일 것이라는 상상했는데~ ^^::
이달 들어 책방에 벌써 두번 갔네요.
인터넷 서점에서 배달오길 못기다려서였죠.
갑자기 책사는 것 역시 충동구매는 맞는것 같은데 전혀 반성하고 싶지는 않구만요~
참! 사진 좋아욧!!!!
찍을 때 벌써 느낌이 좋더라구요.
칭찬 감사합니다.
감동적이예요.
슬프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고..
조기가 외국서적 코너라 도서관에 가도 찾을 수 없는 책들만 있죠.
난 여자 신발이 그렇게 헤어져 있는 건 난생 처음 본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