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에서


을지로와 청계천 사이의 한 횡단 보도.
빨간 신호등이 버티고 서서
사람들의 길을 막습니다.
채 열 걸음도 안되는 짧은 거리지만
아무도 그 길을 건너가지 못합니다.
때로 슬쩍 길을 건너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빨간 신호등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빨간 신호등의 위용은 정말 대단합니다.
사람들의 걸음을 일거에 멈춰 세우니 말입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두 시가 되자
빨간 신호등의 그 위용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빨간 신호등이 붉은 눈을 부릅떠도
사람들은 모두 신호등을 무시한채 길을 건너갑니다.
빨간 신호등은 그때부터 무력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길을 건너고
빨간 신호등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뿐입니다.
토요일 오후 두 시는 차없는 거리가 되는 시간.
사람들이 빨간 신호등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시간입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3월 22일 서울 청계천에서

8 thoughts on “빨간 신호등

  1. 첫번째 사진 찍으시고 오후 2시가 되도록 한 장소에서 기다리셨나봐요.^^

    뱀딸기 사진은 언제 올라오나 기다리고 있는데….ㅋ

    1. 녜, 끈덕지게 기다렸죠, 5분 동안이나.ㅋㅋ

      행운의 소산이죠.
      사실 차없는 거리가 되는지도 몰랐는데 그냥 빨간 신호등은 힘이 세다 정도의 느낌만 갖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때가 두 시 바로 직전이었죠.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차의 통행을 막아버리더라구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계속 찍게 되었고, 사진에 붙어갈 글도 바뀌게 되었어요.
      화요일에도 충무로에 필름 스캔 맡긴 것 찾으러 나갔는데 지하철에서 남미 사람 둘이 공연을 하고 있더라구요.
      찍을까 하다가 그만 두었어요.
      요즘 너무 많이 찍는다 싶어서요.

      음, 뱀딸기는 절대로 안돼요.
      토끼풀로 하자니까요.
      올림픽 공원에 가면 정말 토끼를 만날 수 있거덩요.

    1. 서울애들이 눈치가 빨라서요.

      우리 동네에도 재미난 사거리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선 횡단보도 신호등이 모두 일제히 켜져요.
      그러니까 파란 신호등이 들어오면 아무 곳으로 마구 건너 X자 형태로도 횡단을 하죠.
      건너고 건너서 옆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언제 그곳 건물의 옥상에서 사거리를 한번 찍어봐야 겠어요.

    2. 가을소리님은 초록불이라고 하셨네요.
      유난히 한국에서만 파란불이라고해서,
      저는 아직도 영어로 신호등 얘기할 때
      무의식중에 blue light이라고 먼저 나오곤 하는데…

      사진속의 횡단보도는 짧아보이는데 다 기다리는군요.
      신호등과는 반대로, 영국에서의 생활이 습관이 되서
      저는 한국에만 가면 무단 횡단하다가 무식하다고 욕 먹네요. 영국에선 신호등과 길에서 쓰레기 버리기는
      아무도 암말 안합니다. 두 개를 지키면 오히려 바보죠.

    3. 아주 짧은 곳의 신호등은 왜 설치했나 싶어요.
      그냥 적당히 눈치보며 건너가도록 하는게
      더 편리할 것 같아 보이거든요.
      지나칠 정도로 신호등이 많다 싶은게 서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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