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동안에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6일 하남 산곡동의 객산에서

9일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열흘에서 하루가 빠지니까
열흘을 한 단위로 끊어 버릇하는 우리의 습관에서 보면
하루가 모자란 느낌도 납니다.
9일 전에 우연하게 하남의 산곡동에 있는 객산에 올랐다가
진달래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진달래는 맨앞에 꽃을 내세워 내게 인사했고,
그 뒤엔 꽃을 예비한 꽃몽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뒤쪽에선 푸른 잎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나무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을 달게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직 주변은 가을색이 그대로여서
눈을 돌리는 곳 어디나 갈색이 돌고 있었습니다.
9일이 지나고 다시 그 옆을 지나다
그때의 그 꽃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죠.
그때의 그 꽃이란 것을.
그때 내게 인사했던 꽃은 긴 꽃술만 남겨놓고 이미 시든 지 오래였습니다.
꽃의 추억은 양쪽으로 펼쳐든 푸른 잎이 간직했다 내게 전해주었습니다.
내년에 꼭 다시 보자고 했다더군요.
몽우리에 싸두었던 꽃은 이제 꽃을 활짝 펼쳐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등을 보이고 있었죠.
아마도 녀석은 내가 제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가 봅니다.
그렇지만 나는 뒷모습만 보는 것으로도 아주 좋았습니다.
입을 내밀어 빛을 빨던 맨 뒤의 새순은
이제는 팔을 크게 벌리고 빛에 온몸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주변엔 이제 초록빛이 완연하게 차 있었습니다.
단 9일 동안에 옛꽃이 내년을 기약하며 길을 가버렸고,
보자기에 싸두었던 꽃이 새롭게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단 9일 동안에 산은 갈색 추억을 물리고
초록빛 생명을 그 자리에 채워놓았습니다.
9일은 짧은 시간이 아닌듯 합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8년 4월 14일 하남 산곡동의 객산에서

6 thoughts on “9일 동안에

  1. 뒷모습을 그린 화가의 그림들을 모은 적이 있어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고개 돌린 진달래의 앞모습도 보셨네요..
    9일 동안의 변화~~~동원님의 시선에 편승하여 잘 보았어요…
    그래서 봄길은 짧다고 하나봐요^^

    1. 진달래가 뒷모습이 더 예쁠 때가 많더군요.
      특히 햇볕을 듬뿍 받고 있을 때는 뒷모습이 훨씬 더 예뻐요.
      역광으로 찍으면 작은 빛들이 반짝거리죠.

  2. 그동안 진달래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잎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꽃순과 잎순이 따로 있네요.
    덕분에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뒷배경이 brown에서 green으로 바뀌었네요, 9일만에–.

    1.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산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초록이 조금씩 조금씩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아직 진달래는 북쪽으로 가면 여전히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3. 전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보내서인지…..
    진달래꽃을 보면 화전 생각부터 떠 오릅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던 소시적이 그립네요. ㅎ

    우연의 일치인가요?
    어제 어떤분이 저보고 뒷 모습은 자기에게 보이지 말아 달라 부탁하던데,,
    뒷 모습까지 별로인가?ㅎ

    1. 사실은 요며칠 계속 남한산성에 가고 있어 어제도 사진 속의 진달래를 또 봤어요. 이번에는 앞모습도 보고 말았지요. 뒷모습을 보니 앞모습을 기어코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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