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사진

Photo by Kim Dong Won


흑백 사진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앞쪽에 왜 흑백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사실 나도 궁금했던 점이었다.
세상은 컬러인데 왜 흑백 사진을 고집하는 것일까.
저자인 슈스는 흑백이 컬러보다 더 사실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얘기는 내게 있어 흑백이 컬러보다
더 많은 얘기를, 더 진실하게 들려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흑백을 가리켜 오랜 친구같은 색이며,
그래서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에 비하면 컬러는 너무 혼란스럽다는 것이 그의 평가이다.
그런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컬러 사진에선 색들이 모두
자기를 주장하려 들기 때문이다.
컬러에선 색들이 모두 자기 색으로 목소리를 높이려 든다.
그러나 흑백 사진에서 흑백은 색이라기보다
차라리 밝음과 어둠이다.
그 밝음과 어둠은 내겐 빛의 농도로 이해가 되었다.
때문에 흑백 사진 속에선 색들은 사라지고
대신 오직 빛만 남는다.
즉 흑백 사진 속에선 세상이 색이 아니라
색의 이전으로 돌아가,
바로 그 색의 출발점이었던
빛이라는 이름의 기본으로 환원이 되며,
그 기본으로서의 빛은 아직 색을 갖지 않은 채
오직 그 농도의 차이로 밝음과 어둠만을 갖는다.
흑백 사진이란 내가 보기엔
바로 그 기본으로서의 빛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욕망이며,
흑백 사진의 매력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은 색으로 어지럽혀져 있다.
흑백 사진은 그 어지러운 색을 모두 제거하고
대상의 핵심을 마주하도록 해주는 사진이다.
책을 읽다가 그녀의 사진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색을 모두 제거하고
흑백의 그녀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생각해보니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흑백의 그녀였다.
아직 색으로 어지럽혀지기 전이었다.
사진 속에 그때 내가 만났던 흑백의 그녀가 있었다.

***얘기를 인용한 책은
Berhard J Suess, Creative black-and-white photography: advanced camera and darkroom techniques, Revised Edition, Allworth Press, 2003.

8 thoughts on “흑백 사진

  1. 극사실주의를 지향하는 영화 중에도 일부러 흑백으로 촬영한 거이 종종 있지요?
    언젠가 친구의 영화 일을 잠시 도왔는데, 현상된 흑백의 서사를 보니 왜 그것을 고집했는지 짐작이 가더군요.
    어제 7분의 1을 본 영화도 같은 경우인 것 같아요. 나머지를 봐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 여섯 시간어치를 더 봐야 합니다. ㅎㅎ), 음향과 색을 철저히 배제하고 느린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삶의 호흡, 인간의 사고의 속도를 징그럽게 잘 잡아낸다는 느낌이었어요.

    1.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속도는 나를 여기서 어디로 빨리 데려다 주는 것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그 사이의 모든 것을 다 잡아먹어 버려요. 나는 여기에 서 있고 시간이 나를 지나쳐 여행하도록 내버려두는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2. 언젠가 컬러사진이 사라진다고 해도, 흑백사진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왜 일까요? 흠, 그냥 대답할 수 없을만큼…

    흑백사진하면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르는 아련함 때문일려나요.
    괜시리 한국 학원에서 일할 때 기억이 떠오르네요. 가슴이 아리아리…

    1. 사진을 이야기로 이해하면 흑백이 아무래도 많은 얘기를 담게 되죠.
      흑백으로 사진을 잘 찍던 사람이 있었는데 요즘 도통 온라인상에 나타나질 않네요. 촛불이 한창일 때 자주 봤었는데… 갑자기 아무 소식도 없으니까 걱정도 되고.

  3. 원초적인 빛의 순수, 그곳이 흑백의 세계가 아닐까요.
    세상의 색으로 어지럽혀지기 전의 맑음이 자리하던 그곳이 그립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두 갈래로 머리를 따고 사진관에서 찍었던 흑백사진이 지금도 제 가장 순수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기본의 빛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1. 저는 기억에도 없는 흑백 사진도 있더라구요.
      할머니 할아버지랑 찍은 사진인데… 그 사진을 찍은 기억이 도통 떠오르질 않더군요.
      아마 우리가 그래도 순간순간 그 흑백의 시절로 돌아가곤 할 거 같아요.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가운데 놓고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게 삶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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