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5월과 6월은 언제나 장미의 달이다.
조그마한 우리 집 마당을 넝쿨장미가 온통 붉게 뒤덮기 때문이다.
그것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장미의 달이 되면 아울러 우리 집은 장미의 집이 된다.
원래 이 집은 우리 집이지만
우리는 장미의 달엔 주저없이 이 집을 장미에게 내준다.
사실 마당엔 넝쿨장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구석에는 환한 배꽃으로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배나무가 있고
또 한쪽 구석에는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해 우리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지만
잎사귀는 무성하기 이를데 없는 감나무가 있다.
그 사이에는 가을에 노란색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은행나무가 서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무도 우리 집을 자신의 집으로 삼지 못한다.
오직 넝쿨장미만이 붉은 꽃을 피워올리는 5월과 6월에
우리 집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 집이지만 우리가 스스럼없이 내주는 장미의 집,
그게 5월과 6월의 우리 집이다.
이육사의 7월이
그의 고향에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라면
우리 집의 5월과 6월은
붉게 피어난 넝쿨장미가 마당을 뒤덮는 계절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집은 장미의 집이다.
장미는 마치 가파른 계곡을 쏟아져 내려오는 물처럼,
아니면 산골짜기를 무서운 기세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태난 눈처럼,
그 붉은 꽃을 화려하게 쏟아내며 자신의 계절을 뜨겁게 장식한다.
장미를 키우기 위해 내가 해준 것이라곤
사실 장미가 뻗어갈 줄을 쳐놓은 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장미는 지탱할 줄을 마련해주자
마치 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대처럼
그 줄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는
해마다 5월과 6월에 밤낮없는 꽃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장미는 골목길로 쏟아져 내려오는가 싶으면
또 어느새 지붕으로 날아오르며 날렵하게 몸을 세운다.
올해는 어머니께서 특별히 장미나무에 거름을 하셨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유난히 꽃이 많고 또 색깔이 더욱 붉다.
장미는 집안에 갇히는 법이 없다.
슬쩍 담을 넘어 지나는 사람들의 머리맡으로
고개를 내민다.
지나는 사람들이 눈인사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이층의 철제계단까지 올라간 장미는
졸지에 그 우리 집의 목에 걸어놓은 화려한 꽃목걸이가 되었다.
대문 바로 위에선 문밖까지 누가 먼저 나가나
경주가 벌어진 모양이다.
아무래도 딩동딩동 누군가 초인종을 누를 때마다
꽃들이 대문밖으로 가장 먼저 고개를 돌렸는가 보다.
조심조심!
그렇게 몰려나가다 걸려 넘어질라!
넝쿨장미는 허공을 꽃밭으로 삼는다.
비어있을 때는 마당의 위쪽 하늘이 허공에 불과하지만
넝쿨장미가 꽃을 피워 그 허공을 덮고 나면
그 허공은 이제 공중정원이 된다.
보이기엔 사태난 듯이 대문으로 쏟아져 내려가고 있지만
사실은 대문의 절반을 넘어가는데 두 해 정도가 걸렸다.
세월로 보자면 넝쿨장미의 걸음은
성격급한 사람들은 아무도 참을 수 없을 만큼 느린 셈이다.
그러나 장미는 그 느린 걸음으로
매년 5월과 6월이면
이제 이 집을 자신의 집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이르렀다.
나는 가끔 이층과 옥상에서
아무 생각없이 우리 집의 공중정원을 내려다본다.
그때면 그저 흐뭇하기만한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
생각을 지우고 그저 흐뭇할 수 있는 행복감,
그게 넝쿨장미가 내게 주는 선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미는 마치 축포처럼
꽃을 터뜨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두 송이니까
펑펑 두 발을 연이어 터뜨린 셈이다.
때로 꽃을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지끝에 빡빡하게 꽃들이 자리한다.
왜 장미에겐 유독히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일까.
그것은 겹겹의 잎들이 둥글게 동심원을 그리면서
사실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소용돌이 앞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장미는
그냥 꽃이 아니라
꽃의 소용돌이이다.
우리 집의 5월과 6월엔 그 소용돌이가 깊고 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