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 이상열의 그림 <개나리>

이상열 작 <개나리>

오늘 우리집 거실에 그림 한점이 걸렸다.
이상열 선생님이 내게 보내준 <개나리>이다.
받자마자 냉큼 아래층 거실의 벽에 걸었다.
한참 동안 아무 말없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내 집인 관계로 앉아서 볼 수도 있고, 누워서 볼 수도 있으며,
또 짐짓 마치 거실이 전시장이라도 된 것처럼 서서 볼 수도 있다.
전시회에 가면 그저 그림을 보는데 그칠 수밖에 없지만
이건 그와 달리 한폭의 그림으로 집안을 가득 채운 경우라서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아무런 시간적 제약없이
그냥 집에 있을 때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그림이 걸려있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그림이 나의 것이라는 느낌을 너무도 확연하게 해준다.
사람들이 그래서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는데 만족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좋은 그림을 자기 것으로 갖고 싶어 하는가 보다.

한참 동안 그림을 바라보다 보니
나는 거실을 버리고 어느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먼저 노란빛이 가장 풍요로운
개나리의 정수리 부분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오호, 그림 속으로 들어와서 보니 그곳은
노란꽃이 끊임없이 솟아나는 개나리의 샘터였다.
개나리는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꽃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나는 그곳에서 노란 물줄기를 타고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리고 아래쪽에 이르러선 노란 물줄기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며
한참 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러다 다시 정수리의 그 샘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그렇게 다시 개나리의 샘터로 올라가다 보니
꽃은 노란빛으로 밝고 투명하기만 한데
주변은 흑빛으로 아주 어둡다.
왜 그런 거지?
그때 그 주변의 어두운 흑빛 어둠에서
흙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그렇구나.
개나리는 정수리의 샘터에서 힘있게 솟아
밝고 투명한 노란빛으로 세상을 향하여 쏟아져 내려가고 있지만
그게 사실은 흙빛의 땅, 저 깊은 곳에서 솟는 것이었구나.
개나리는 그저 솟는 것이 아니라
땅을 잉태의 자궁으로 삼아 겨울을 넘기고
드디어는 꽃을 뿜어내는 것이구나.
알고보면 개나리꽃은 대지의 자궁에서 솟는 샘물같은 것이구나.
개나리는 그저 노란꽃이 아니라 그러고 보면
열달의 산고끝에 아이를 세상에 내놓는 어머니처럼
겨울을 산고의 계절로 앓으면서
봄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생명력의 끈과 같은 것이구나.
생각이 그렇게 머리를 스치자
이제 흙냄새가 코끝에 더욱 완연한 것 같다.
그리고 정수리의 개나리샘에 이른 나는
또다시 솟아나는 개나리꽃의 폭포를 타고
신나게 아래쪽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한번 들어온 그림 속에서
그렇게 나는 나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3 thoughts on “그림 속으로 들어가다 – 이상열의 그림 <개나리>

  1. 그림 한 점이 왔는데
    넘진샘과 예쁜 선옥언니까지 함께 온 느낌이네…

    샘, 그리고 언니 넘 고마워요.
    두 분이 항상 그 자리에 계셔서 행복해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덕소로 커피마시러 놀러갈게요^^

  2. 너무 멋져요~~^^
    그냥 그림만을 두고 봤을땐 (윗사진) 개나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거실에 걸어두니 살아나네요.^^
    영화 데이지를 보면서 여주인공이 멋진 데이지 꽃밭을 그리는데
    아..저런 그림 한장 거실에 두면 다른 장식이 필요없겠다 싶었어요.
    갑자기 그림도 배워서 마구 그려보고싶어지더군요.ㅋㅋ

    1. 돈으로 따질 수야 없는 거지만
      그림값이 한두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주변에 물어보니 화가가 주면 그냥 받는 거라고 해서
      눈 딱감고 받았죠.
      대신 내가 저 그림을 아주 많이 사랑해 주려구요.
      자주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놀아야죠.
      아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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