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그 바람의 문양

Photo by Kim Dong Won
소백산에서

물은 계곡을 내려갈 때면
온몸이 소리였어.
경사가 급하고 길목이 좁을수록
물은 더욱 소리를 높였지.
그치만 사람들은 물의 소리를 탓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물속으로 발을 담그고
물의 빠른 유속이 발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경쾌한 속도감을 즐겼지.
계곡을 내려갈 땐
사실 물에게 어떤 얘기도 건네기가 어려웠어.
그냥 우리의 입을 닫아버리고
물소리에 몸을 묻은채 놀다가 오는 수밖에 없었지.
그치만 우리는 계곡에 발을 담그고
마냥 즐겁게 물과 노닥거리며 놀다가 오곤 했지만
사실 계곡을 지나는 바람은 그때마다
계곡을 내려가는 바쁜 물의 걸음과 그 온몸의 소리가 아쉽기만 했어.
바람은 알고 있었거든.
자신이 물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랑할 때면 항상 그래.
사랑하는 상대에게 나를 새기고 싶지.
살다가 자꾸 사랑이 의심이 간다는 건,
그러니까 상대방의 어디를 뒤져도 내가 새겨진 흔적이 없을 때의 초조함이야.
물이 계곡을 내려갈 때면
어디를 어떻게 뒤져보아도 온통 물소리 뿐이야.
바람이 자신을 들이밀 구석을 찾기가 어렵지.
그러니 계곡에선 바람도 물에서 자신의 사랑을 찾아내기가 여의치 않아.
우리가 계곡에 발을 담글 때,
그래서 바람은 우리의 이마를 스치는 시원함으로
잠시 우리와 노닥거리며 그 계곡의 시간을 견디지.
우리가 물과 노닥거릴 때,
사실 바람은 우리와 노닥거리며 계곡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거야.
그렇다고 물이 항상 그렇게 제 온몸으로 소리를 일으키며
계곡의 길을 가는 것은 아냐.
물이 깊이를 얻으면서 발걸음을 늦추면
그때는 한없는 고요가 그 자리에 있었어.
그 고요는 물의 깊이보다 훨씬 더 깊게 느껴지곤 했어.
바람이 계곡의 시간을 견디며
물을 따라 함께 길을 내려가고,
그렇게 기다리며 함께 걸음을 하다 보면
물이 깊이를 갖고 걸음을 멈추는 시간이 오지.
그땐 물은 아무 말이 없어.
한없는 고요가 그 자리에 있지.
하지만 혹시 봤어?
물이 한없는 고요가 되었을 때
그냥 옅은 바람에도 완연하게 일어나는 물결의 문양을?
나는 그때마다 물에 새겨져 있다가 떠오르는
바람의 무게를 봐.
그때면 굵은 문양의 한쪽으로 작은 잔물결이 보일 때도 있어.
나는 그게 물에서 제 사랑을 확인한 바람의 전율로 보여.
우리가 사랑할 때도 똑같은 거 같아.
때로 우리는 계곡을 내려가는 물처럼
그저 우리들 각자의 소리만 높이며
우리의 생을 앞으로 질주하는 거 같아.
그때는 서로가 힘들어.
상대의 어디에서도 나를 볼 수가 없거든.
그렇게 보면 사랑이란 바로 그 계곡의 시기를 잘 견디는 거야.
그러다 사랑이 깊이를 얻으면
우리의 소리가 모두 사라지고
너에게선 나의, 나에게선 너의 문양이 떠오르지.
우리 오늘 만나서
어디 깊이가 깊은 강으로 나가볼까.
가서 그곳에서 물결이란 이름으로 바람의 문양이 떠오를 때
그걸 너에게서, 혹 나에게서 떠오르는
내 사랑의 문양인양, 또 네 사랑의 문양인양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다 올까.
가끔 힘들 때면
우리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바람의 문양이 이는 강가로 나가
그 문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았다가 오면 어떨까.

Photo by Kim Dong Won
내촌천에서

2 thoughts on “물결, 그 바람의 문양

  1. 물결을 찍으셨을까..했었는데 역시 멋지게 찍으셨네요.^^
    물을보니 뛰어들고싶어요. 올여름은 아이들 노는거만 바라보고 있지 못할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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