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를 쓰다 잠시 마당을 내다본다.
볕이 아주 좋았다.
좋은 볕은 종종 사람을 바깥으로 불러내곤 한다.
대문을 열고 나가 골목에 서 본다.
완연한 봄이다.
담너머로 마당을 들여다본다.
아마 처음엔 봄도 그랬을 것이다.
용케도 잊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우리 집 골목을 찾아왔을 것이며,
담너머로 마당을 흘깃거렸을 것이다.
그러다 쌀쌀한 기운이
며칠 골목을 쓸고가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봄은 걸음을 남쪽으로 돌리지 않고
담밑에 쪼그리고 앉아 며칠을 버텼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기는대로
담너머의 배나무를 가장 먼저 흘깃거렸을 것이다.
그러다 둘이 눈이 맞고,
봄의 온기가 옮겨붙으면서
하얀 배꽃이 탁탁탁 불꽃처럼 피어올랐을 것이다.
그때쯤 이제 더이상 담은
발돋음을 하고 힐긋거려야 할 높은 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담너머에서 눈만 마주쳐야 했지만
몸이 풀리고나자 담벼락 끝에 턱을 고이고 눈을 맞추고 있다 보면
어느새 몸이 스르르 마당으로 넘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쯤 마당의 빨래줄에 걸어놓은 고무장갑도
물만묻으면 차갑게 입을 악다물어야 했던 긴장을 풀 수 있었을 것이다.
마당으로 넘어들어온 봄의 온기에 기대면
몸의 물기는 곧바로 증발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리곤 처음엔 눈만 마주하고 있어도
평생 질릴 것 같지 않았을 배꽃이
하나둘 꽃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쯤 봄은 떨어지는 배꽃을 아쉬워하기보다
몸의 노근함에 아웅하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 마당에 봄이 왔을 것이다.
햇볕이 좋은 오후 시간,
잠시 골목에 나갔다가
담너머로 마당을 힐끗거렸더니
봄이 마당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