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소묘

Photo by Kim Dong Won
경기도 퇴촌 분원리의 한강변에서


아마 당신도 알고 있을 거예요.
저녁에도 낯빛이 있다는 것을.
소음과 퇴근길의 분주함이 간섭하는 도시의 저녁은
그 낯빛을 살피기가 어렵죠.
아니 어쩌면 도시는 저녁의 얼굴이 지워진 곳인지도 몰라요.
우리는 매일매일 아침과 저녁을 살고 있지만
그러나 그 아침과 저녁의 낯빛이 지워져 있는 곳,
그게 우리가 사는 도시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침과 저녁이 오직 벽에 걸린 시계의 숫자와 바늘 위에만 걸려있는 곳,
그게 바로 우리가 사는 도시이고,
그리고 그 바늘이 아침이나 저녁을 가리킬 때마다
분주하게 출근과 퇴근을 준비하는 게
우리가 엮어가는 도시의 일상인 것 같아요.
아마 시간이 날 때마다
이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도
알고보면 잃어버린 아침이나 저녁의 얼굴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어쩌다 당신과 함께 이 도시를 벗어난 날이면
그 날의 저녁 시간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분주함으로
길바닥에 버리고 싶질 않아요.
그런 날 당신과 함께 하는 저녁은
어디 인적이 드문 조용한 강변에서 맞고 싶어요.
아마도 그런 날 저녁해는 산을 너머가면서 빛의 3할쯤은 데리고 가버릴 거예요.
그러면 빛의 3할이 빠져나간 그 흐릿한 자리로
저녁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게 되죠.
참, 이상하죠.
항상 무엇인가를 보려면 환한 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빛이 3할쯤 빠져나간 자리에 저녁의 얼굴이 있다니 말예요.
물론 그 저녁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거예요.
그 자리는 곧 밤의 자리가 될 거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잠깐이지만 그렇게 강변에 앉은 시간에
저녁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거예요.
내가 강변에 앉아 당신과 함께 그 저녁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속뜻은
그 저녁이 마치 우리가 자주 잊고 사는 우리들 사랑의 얼굴 같아서 그런 거예요.
도시에서 저녁이 지워지듯,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도 자꾸 사랑이 지워진 듯 허전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도시에서도 저녁은 매일 우리 곁에 어김이 없죠.
그러니 사실 도시에서 저녁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냥 분주한 삶 속에 묻혀있는 거예요.
가끔 해지는 강변에 앉아 묻혀있던 그 저녁을 다시 꺼내들면
그 저녁 시간에 우리의 사랑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다시 얼굴을 내비치며
우리에게 미소를 지을 것만 같아요.
저녁해가 빛의 3할을 데리고 간 자리에 저녁이 들면
우리도 일상의 분주함을 3할쯤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고
그러면 바로 그 때 저녁과 함께 우리의 사랑이 조용히 걸음하게 되는 거지요.
그게 바로 내가 한적한 강변에서 당신과 함께 저녁을 맞고 싶은 이유예요.

Photo by Kim Dong Won
경기도 퇴촌 분원리의 한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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