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와 사진 – 니콘 D700을 구입하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올 때가 있다.
내 대답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카메라하고 렌즈 좋은 거 사면 되요.”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카메라는 도구에 불과한데
카메라가 좋다고 사진이 잘 나올리가 있냐는 반응이다.
2009년 9월 1일날, 번역일 끝내고 용산에 나가
카메라를 새로 장만했다.
니콘의 D700이다.
니콘의 D70을 장만한 것이 2004년이었으니까
5년만에 카메라를 바꾼 셈이다.
내 생애 최초의 풀프레임 바디이다.
풀프레임 바디가 무엇인지는 묻지 마시고
그냥 무지 좋은 카메라려니 생각하시면 되겠다.
산 뒤에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가는 동안 가슴이 마구 뛰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카메라하고 렌즈 좋은 거 장만하면 된다는 내 생각이
정말 맞는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Photo by Kim Dong Won

얼마들었어?
카메라 바디하고, 충전지 하나 더 구입하고, 16기가짜리 CF카드하고 해서
300만원 좀 넘었어.
으으, 뭐, 300만원!
200만원에도 우리 딸이 허걱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허거덕하겠구만.
그래도 사진이 완전히 달라.
이거 보라니까.
너도 한번 찍어봐.

Photo by Cho Key Oak

아니, 이거 니콘 색감 맞어?
이건 필름 색감 같어.
그녀가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갈 때
이것좀 빌려가면 안되겠냐고 했다.
물론 그러고마고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 사무실의 블라인드.
채광 도구가 좋으면 더 많은 광석을 캐낼 수 있다.
좋은 카메라는 좋은 채광 도구이다.
그런데 좋은 카메라는 어찌나 좋은지
깊숙이 파지 않고 그냥 우리의 생활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도록 해준다.
그녀의 사무실에 그렇게 자주 갔지만
한번도 블라인드를 찍을 생각을 못했다.
그건 그 전의 카메라에선 105mm 렌즈를 끼우고 초점을 맞추면
블라인드가 150mm 렌즈를 끼웠을 때의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거리에선 구도가 잘 나오질 않았다.
105mm 렌즈를 끼우고 블라인드에 초점을 맞추었더니
곧바로 구도가 나오고 그럴듯한 사진 한장이 얻어졌다.

Photo by Kim Dong Won

타원형의 탁상 거울에 비친 그녀.
열심히 일하고 있어.
내가 홍대 거리 나가서
이것저것좀 찍어보고 들어올께.

Photo by Kim Dong Won

언젠가 찍었던 가배두림 홍대점.
그녀의 머리 속 그 남자가 오늘도 여전히 보인다.
사진 찍고 있는데 그럴 듯해 보였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여자가 씨익 웃었다.
나도 웃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오후의 뜨거운 햇볕이 그대로 찍힌 것 같다.
으으, 이제 벽을 찍으면서
강렬한 햇볕의 느낌도 찍을 수가 있다.

Photo by Kim Dong Won

자전거를 타고 가는 예쁜 여자 아이.
골목에서 나올 때 이거다 싶어 급히 초점을 맞추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까지 움직이는 대상을 계속 추적하며
초점을 맞추는 기능이 있다.
순식간의 장면들을 곧잘 잡아낸다.

Photo by Kim Dong Won

사무실로 돌아와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늘에 낮달이 떠 있고, 저녁 노을이 엷게 서려 있었다.
그녀가 찍은 사진을 보더니 바로 이게 내가 원하는 색상이야라고 말했다.
딸아이에게 펜탁스 카메라 건네주고
내가 쓰던 D70 쓰기로 했는데 자꾸만 새 카메라를 욕심낸다.

Photo by Kim Dong Won

낮의 사진은 왠만큼 실험을 마쳤고,
컵라면으로 저녁 떼운 뒤,
밤사진을 실험하러 나갔다.
실험을 위해 DX 렌즈를 장착했다.
렌즈 종류도 잘 인식을 한다.
풀프레임의 크기를 살리진 못하지만
그래도 사진은 아주 잘 찍혔다.
바의 안에 있던 남자가 힐끗보더니 사진찍지 말라고는 하지 않고
살짝 고개를 숙여 피해주었다.

Photo by Kim Dong Won

골목의 옷가게 앞에 놓인 노란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옷가게 주인이 자전거타고 출퇴근하나 보다.
종종 홍대 거리에서 자전거를 탄 여자들을 만난다.
한번 사람들 사이를 자전거 타고 미끄러져 가는 여자를 찍어보고 싶다.
느낌 좋은 이야기하나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Photo by Kim Dong Won

옷가게의 밤풍경은 색채자체로만 보면
옷가게가 아니라 그냥 미술품으로 즐겨도 무방할 정도란 생각이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에스프레소 한잔하고 가실래요?
편의점 창문에서 잘라냈다.
항상 대상을 찍을 때
여기선 어떤 렌즈를 끼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렌즈를 바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렌즈를 바꿨다면 더 좋은 사진이 나왔을 것이다.
실험이라 일단은 그냥 찍어보았다.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

Photo by Kim Dong Won

이 옷가게 앞에서는 전에도 여러 번 사진을 찍었었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은 한번도 얻지를 못했다.
가게는 매우 멋진 것 같은데
사진은 눈으로 보고 있을 때의 느낌을 살려주지 못했다.
새 카메라를 산 날, 드디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다.
좋은 사진, 그러니까 찍은 뒤에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고 싶다면
일단 좋은 카메라가 있어야 한다.
좋은 렌즈 있으면 더 좋겠지만
바디가 좋으면 렌즈가 좀 후져도 사진이 잘나오는 느낌이다.
각도를 아주 조금만 더 낮추었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수평 가이드 안내 기능이 있는데 그걸 찾아보아야 겠다.

Photo by Kim Dong Won

모든 것이 다 작품의 대상으로 보인다.
평상시 전혀 내 눈길을 받지 못했던 골목길도
이제는 달리 보인다.
골목에서 전등불을 살짝 피해 잠자고 있는 차를 찍고 싶었는데
차가 잘 보이진 않지만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
전등불의 빛이 번져 보이질 않아서 좋다.

Photo by Kim Dong Won

도시의 밤은 사실 사진찍기에 더 좋은 시간이다.
대상만 강조하고 다른 부분은 시커멓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선이 흩어지질 않는다.
물론 카메라가 좋았을 때의 얘기이다.

Photo by Kim Dong Won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천호 사거리를 지나 길동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가로등이 수평으로 쏘아대는 빛줄기들이
그물처럼 허공에 걸려있는 것이 도시의 길이다.
인터페이스가 달라 꼬박 하루를 카메라에 매달려야 했다.
가운데 손가락 부분에 셔터를 오픈하는 버튼이 놓여있어
부지불식간에 자꾸만 그걸 누르게 된다.
맨처음에는 카메라가 불량인줄 알았다.
좀 살짝 내려서 설치하지 하는 불만이 생긴다.
사진의 회전이 되질 않아 그것도 잠시 씨름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대충 익힌 것 같다.
자세한 것은 시간나면 그때그때 들여다 보려고 한다.

하하하, 여러분들, 저 카메라 바꿨어요.
파인더로 들여다 보면 들여다 보는 모든 게 예술로 보이는 놀라운 카메라예요.
그래서인지 카메라 둘러메고 걸어가다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어디나 대고 마구 눌러대서 큰일났어요.
좋은 사진찍으려면 좋은 카메라 장만하면 된다는 제 생각은
이제 완전히 굳어져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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