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기다림은 그녀가 나를 용납하는 시간을 말합니다.
난 기다릴 수는 있지만
그녀가 말하는 기다림은 좀 말의 의미가 다릅니다.
그 기다림은 그냥 기다리는 기다림이 아니라
아무 말없는 기다림입니다.
그녀가 내게 적응을 못해 우리 사이가 삐걱거리면
그녀가 내 안에 말을 풀어놓고,
그녀의 말은 내 안을 뛰어다니며 내 안을 온통 짓밟습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다스려야할 말의 고삐를 곧바로 낚아채고 맙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안에 내 말을 풀어놓습니다.
그때부터 내 말이 그녀의 안을 짓밟고 돌아다닙니다.
그녀는 내 말의 고삐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말은 거친 야생마라 매우 거친 듯 해도
말의 속성을 조금만 꾀차고 있으면 곧바로 고삐를 잡을 수 있는 말입니다.
나의 말은 잘 길들여진 말이라
그녀의 손아귀를 빠져나가는데 아주 능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지간해선 나의 말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그녀가 풀어놓은 그 말의 고삐를 잡지 말고
내 안을 짓밟는 그녀의 말을 그대로 용납한채
그녀 스스로 말의 고삐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내가 보기에 기다림이란 그런게 아닙니다.
말을 풀어놓고 고삐를 잡을 때까지의 시간이 기다림이 아니라
사실 기다림이란 말을 길들여 풀어놓을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녀가 말을 길들여 풀어놓는다면
그녀가 말을 길들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나
그녀가 길들이지 않은 거친 야생마를 그대로 풀어놓는 순간
어느덧 그 고삐를 낚아채 조이고 맙니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있어 기다림이 아닙니다.
그 말을 방치하면 그건 그녀에게도 상처가 되고, 내게도 상처가 됩니다.
그녀는 그 상처가 기다림으로 아문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처는 기다림으로 아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덮혀질 뿐입니다.
길들이지 않은 말은 여러모로 위험합니다.
오늘 나는 내 안에서 말을 길들여 이렇게 풀어놓습니다.
또 이 말이 그녀의 안을 짓밟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길들인 말이 보다 안전합니다.
길들인 나의 말에 그녀가 올라타서 그녀의 안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있어 어찌보면 기다림이란
길들인 나의 말에 그녀가 올라타길 기다리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