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보러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을 지나게 되었지.
나온 김에 사진이나 찍다 간다고
어린이대공원에 들르게 되었지.
자주 들른 곳이었지만
이번에 내 발걸음을 불러 세운 건 한 비석이었어.
어린이헌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더군.
하지만 난 알 수 있었지.
정연하게 말을 맞춰 늘어선 그 비문 속에
사실은 그녀가 흩어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잠시 그곳에서 놀았어.
비석을 돌며 그녀 찾기 놀이를 하면서.
난 먼저 그녀의 성씨를 찾아냈지.
아주 교묘하게 숨어있더군.
히읏(ㅎ) 위에 살짝 올라타고 있었어.
하지만 내가 슬슬 다가서자 ‘좋’아 죽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어.
어쨌거나 이응(ㅇ) 위에 올라 앉아 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히읏은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을 수 있는데
이응은 균형 잡기가 좀 어렵거든.
그럼 ‘종’치는 수가 있어.
미음(ㅁ)도 위험해.
그 위에 앉아 있으면 ‘좀’스럽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보다 더 위험한 경우도 있지만
그녀는 위험한 경우를 살살 잘도 피하여
아주 가장 좋은 곳에 숨어있기는 했어.
가운데 이름자도 결국은 찾아냈어.
기둥 두 개를 양옆으로 세워
목발 짚은 기역(ㄱ) 자로 위장을 했더군.
그녀는 가끔 두번째 이름자를 숨길 때면
영어 속으로 숨어들 때도 있어.
180도로 몸을 뒤집어
벽에 기대 앉은 니은(ㅣㄴ)자로 위장을 하지.
그때면 나는 그걸 IL로 착각을 하고 그 곁을 지나치곤 해.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그렇게 숨지는 못했어.
그곳엔 영어가 하나도 없었거든.
사실 난 그녀가 기럭지가 짧은 것을 좀 아쉬워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리을(ㄹ) 위에 올라앉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어.
어쨌거나 목발을 짚고 위장을 해도
내 눈은 속이질 못해.
우리가 함께 산 세월이 얼마인데.
그녀의 마지막 이름자를 찾는 건 예상 외로 힘들었어.
왜냐하면 내가 계속 ‘눙’자를 찾고 있었거든.
장난끼 많은 그녀가 그냥 숨어있을리 없다고
지레짐작을 한 거지.
분명 그녀는 어딘가에서 물구나무를 선채로 숨어 있을 거야.
하지만 내 판단은 틀렸어.
역시 이제 그녀의 몸매로 물구나무 서기는 무리야.
그녀의 마지막 이름자는 그냥 아무 위장없이
평상시의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더군.
몸은 퍼졌지만 얼굴과 목을 길게 뺀 그 모습 그대로.. ㅋㅋ
이름자 세 자를 다 찾고나니 기분이 아주 좋았어.
항상 그녀의 이름자 세 자를 다 찾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
뜻하지 않게 즐기는 그녀와의 숨바꼭질이 그런대로 재미나긴 하더군.
물론 지나는 사람들 눈에는 좀 정신나간 놈으로 보였을 거야.
글자 가까이 눈알을 들이대고
마치 눈알에 글자를 새길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말야.
4 thoughts on “흩어진 그녀, 그녀 찾기 놀이”
다방에서 성냥쌓기 놀이보다 훨씬 재미날 것 같습니다.
저도 시도해 봐야겠씁니다.
이름이란 참 묘해요.
석자의 이름 속에 한 사람을 온전히 담아내니 말예요.
석자를 모두 찾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흩어진 그녀는 찾으셨나요?
용하게도 이름자 속에 흩어져 숨어있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