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2월 18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어느 겨울, 눈소식 듣고
백담사행 버스에 몸을 실은 적이 있었다.
입구에서 백담사까지는 두 시간 거리.
입구의 관리 직원이 대뜸 한 말은 “못들어간다” 였다.
눈이 오면 입산금지란 것이었다.
사고를 염려한 걱정 때문이었겠지만
서울서 삼각대를 둘러메고 그곳까지 간 나는,
그것도 눈 소식 하나에 홀려 그곳까지 간 나는
그의 첫마디에 약간 심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산에 갈 생각이 아니며
사진찍으러 내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어깨에 둘러맨 카메라와 삼각대만으로
충분히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베낭 비슷하게 생긴 등뒤의 가방이
사실은 등산용 가방이 아니라 카메라 가방이란 것을 보여주려고
그 카메라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다섯 개의 렌즈를 모두 보여주었다.
그건 나 이렇게 렌즈 다섯 개를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다는 시위이기도 했다.
나는 백담사까지만 가서 사진을 찍고 나오겠다고 했다.
그는 백담사에서 더 들어가면 안된다고 거듭 확인을 했다.
나도 거듭 확인을 해주고 두 시간 여를 걸어 백담사로 들어갔다.
풍경은 너무 아름다우면 숨을 막는다.
그 날 난 여러 번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여 막힌 숨을 터야 했다.
그리고 거의 절에 다 왔을 때쯤
절에서 걸어나왔다가 들어가는 스님 두 분을 만났다.
두 스님이 합장으로 손을 모아 나를 반겨주었고,
두 분 중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날 오셨습니다.”

스님은 알고 계셨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날이
내가 먼길을 마다않고 찾아오게 된 좋은 날이란 것을.
입구에선 위험한 날이었던 똑같은 날을
스님이 슬쩍 날을 뒤집어 좋은 날로 내게 건네주셨다.
나도 합장하고 스님께 고개 숙였다.
마음이 푸근했다.
눈길을 산책하는 두 스님의 사진 한장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Photo by Kim Dong Won
2005년 2월 18일 강원도 백담사에서

6 thoughts on “좋은 날

    1. 강원도는 눈에 대한 대비가 아주 잘되어 있어요.
      쓴게 아니라 사실은 눈치우는 불도저가 치웠답니다.
      절로 들어갈 때 입구에서 열심히 작업 중인 소형 불도저를 봤지요.

  1. 눈 사진에 눈이 돌아가고,
    눈길 사진에 자꾸 눈길이 가게 하는군요.

    백담사는 아니어도 한계령길은 가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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