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2009

올해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제주도는 사진찍기에 좋은 곳이다.
그곳 사람들에게야 제주 또한 생활의 공간이겠지만
내륙에 사는 우리에게 그곳은 생활을 내던지고 놀러가는 곳이다.
생활을 내던지면 아무래도 삶에 짓눌려있던 감각이 기지개를 편다.
3일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내내 좋았다.
올해는 또 딸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녀와 함께 결혼 생활을 한 지 2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몇년 만에 맥을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아이맥 27인치를 최고 사양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바꾸었다.
내 생애 최초의 풀프레임 바디인 니콘 D700 카메라를 장만했다.
9월 이후의 사진은 모두 새로운 카메라로 담아낸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올해는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올해의 사진 12장을 뽑아 올해의 마지막 날 해를 마무리한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월 16일 경기도 남양주의 운길산)

1
눈이 왔을 때 산에 가면
눈꽃이란 말을 실감한다.
그때면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눈꽃을 피운다.
눈은 이 나무 저 나무의 가지마다 꽃을 안기며
꽃이 꽃나무만의 것이 아님을 일러준다.
눈꽃이 피는 날,
꽃은 꽃을 피우는 나무의 것이 아니라
꽃을 받은 나무의 몫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꽃의 주인은 꽃은 아니라
때로 우리가 들고가서 꽃을 내미는
우리의 상대방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2월 8일 서울 올림픽대로)

2
안개는 길을 조금씩밖에 내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길을 완전히 지우지도 않는다.
지금 조금씩 길을 가고 있다면
길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몇번 안개 속을 가본 경험에 의하면
조금씩 조금씩 벗겨지는 길이 끊어지는 경우는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3월 25일 서울 명동성당)

3
하늘은 높지만
그 높은 하늘의 뜻은 지상에 있었다.
혹 하늘의 뜻이 하늘에 있었다면
아마도 모두 지상을 버리고 하늘로 갔을 것이다.
뜻이 하늘에 있다고
서둘러 하늘로 가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서둘러 하늘로 간 이들을 아쉬워했다.
올해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4월 27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4
비는 꽃피기 전 이른 봄에 내릴 때는
꽃에게 어서어서 피어 겨울을 걷어내라는 손짓이더니
꽃질 때쯤 내리자
이제 여름온다고 빨리 길을 비키라며 등을 떠미는
야박한 손이 되어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5월 14일 서울 천호동 우리 집)

5
잎은 푸르다.
잎은 푸르러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꽃은 붉다.
꽃은 붉어서 뜨거운 열정을 증명한다.
장미는 푸르게 살아있는 뜨거운 열정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6월 20일 서울 돈암동)

6
비는 약간 움푹한 곳을 골라 한 곳으로 모인 뒤,
수면을 평평하게 펴서 화판을 만들고
그곳에다 그림을 그린다.
무수한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7월 24일 서울 홍대 입구)

7
거리도 젊은 거리가 있고 노쇄한 거리가 있다.
홍대의 거리는 젊은 거리이다.
젊은 사람들이 신나게 놀면 그곳의 거리가 젊어진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8월 22일 경기도 팔당의 한강변)

8
분명 물을 길어 올리려고 펌프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붉은 펌프는
무성한 풀만 한가득 길어올렸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9월 4일 제주 협재해수욕장)

9
사람들은 모두 해가 넘어가길 기다렸다.
언덕 위에서 각자의 실루엣을 그리며.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0월 30일 서울 창경궁)

10
봄이 온갖 꽃으로 오더니
여름에는 초록이 범람했다.
가을엔 잎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흔드는 손에 붉은 색과 노란 색이 가득 쥐어져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7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11
나무는 잎새 하나를 남겨두었다.
길을 가다 잠시 시선을 그 위에 얹는다.
늦은 가을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2월 1일 서울 홍대 입구)

12
해의 마지막은 항상 춥다.
털모자 쓰고,
털목도리 두르고,
털옷입고,
따뜻하게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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