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향일암엔 두 번 갔었다.
첫번째 걸음은 2003년 6월 4일에 이루어졌다.
해를 맞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그곳을 올랐을 때는 이미 해는 뜬 뒤였다.
그때는 나 혼자였다.
그곳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고
내 곁에 그녀가 없었다는 뜻이다.
두번째 걸음은 2006년 9월 7일이었다.
이번에는 향일암이 있는 돌산도 아래쪽의 펜션에서 그녀와 함께 묵고
아침 일찍 향일암에 올랐다.
물론 뜨는 해를 볼 수 있었다.
그 향일암이 불탔다고 한다.
올해 20일의 일이다.
2005년에는 양양의 낙산사를 불에 잃었고
2008년에는 남대문이 불에 소실되었다.
두 곳 다 가본 곳이었고, 이번 여수의 향일암도 마찬가지다.
매번 아쉬움이 크다.
남아있는 사진으로 그곳을 다시 가본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해뜨는 풍경.
해가 뜨면서 바다에 빛의 수로를 깔렸다.
잠깐 동안 그 빛의 수로에선 바다가 황금빛으로 일렁거렸다.
빛이 직진한다는 것은 해가 뜰 때
바다에 깔리는 빛의 수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정말 태양은 곧장 우리들에게 달려온다.
곧게 똑바로.
향일암에서 내려다 본 바다 풍경.
하늘엔 구름이, 바다엔 섬이 떠있다.
구름이 바다에 눌러앉아 자신의 자리로 삼으면 섬이 되며
섬이 하늘로 날아올라 정처를 두지 않으면 구름이 된다.
2003년의 대웅전 모습.
아침 여덟시쯤 이곳에 도착했다.
날이 그렇게 좋은 날은 아니었다.
그때는 내 마음도 그랬었다.
2006년의 대웅전 모습.
찍은 시간은 6시 30분경.
햇볕이 대웅전 깊숙이 손길을 집어 넣고 있다.
그러다 서서히 빼내 하늘로 가져가며
결국은 저녁 때 그 손길을 모두 거둔다.
이때는 날이 아주 좋았었다.
그때는 내 마음도 그랬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날씨가 마음을 따라 온다는 느낌이 든다.
2003년에 찍은 작은 바람종의 모습.
전각이 여러 개여서 어디서 찍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6년에는 지붕에서 벗겨져 나간 기와 부분이 눈에 들어왔었다.
비바람이 상당히 거센가 보다.
저렇게 기와가 날아갔을 정도이면.
2003년에는 대웅전 뒤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산쪽으로 올라갔었다.
가다가 한쪽으로 내민 대웅전의 지붕을 찍겠다고
바위 위에서 카메라 렌즈를 망원으로 갈아끼웠다.
그러다 그만 렌즈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렌즈는 굴러서 바위의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절벽 아래로 기어 내려가 그거 주어 가지고 오느랴고 고생께나 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지켜볼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래도 렌즈는 무사히 챙겨갔고 올라왔다.
때문에 이 사진은 사연있는 사진이다.
그 뒤로 절벽 위에선 절대로 렌즈를 갈지 않았다.
부처님상.
찍긴 찍었는데 부처님상이 어디에 서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향일암은 부처님보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과 올라가는 길만 기억이 선명하다.
가끔 찍어놓은 사진도 기억에서 지워져 있을 때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돌을 올려놓았다.
돌들을 돌에 붙여놓은 듯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 아래쪽 풍경을 보며 사진 한장을 찍었다.
나중에 사진을 살펴보며 좀 놀랐다.
2003년에 사진을 찍었던 그 지점에서
2006년에도 똑같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위쪽의 나무가 내가 똑같은 자리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2006년의 사진에선 나무의 가지끝이 부러져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윤곽은 그때의 그 나무가 분명하다.
설악산에 갔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번 했었다.
그때도 한해전에 올려다 보았던 나무를
같은 각도에서 찍고 있었다.
나무와도 인연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2003년에는 아래쪽 바다에서 배 한 척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바다는 진녹색이었다.
2006년에는 아침 태양이 깔아준 빛의 길을 가로 질러
배 한 척이 또다른 자신의 길을 내며 달려가고 있었다.
태양은 빛을 밝혀줄 뿐, 그 빛으로 길을 강요하진 않았다.
오르고 내릴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좁은 통로.
사람들이 마치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이곳을 들고 난다.
둘이 갔을 때는 그녀를 놀려먹었다.
엇, 너도 통과되네.
우리는 내려가고
스님 두 분은 올라간다.
두 분의 민머리가 태양처럼 둥글고 환했다.
4 thoughts on “여수 향일암”
그리 알려지지 않았을 때 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좁은 통로 밑으로 중간 중간에 구멍이 있었는데
천길 낭떠러지 느낌이 들어서 놀랬던 것 같습니다.
소박하다 못 해 볼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최근에 온통 금빛을 칠했다고 하데요.
그래서 벌을 받았다는 얘기를 누군가 하더군요.
좌우지간 사람이 너무 많이 찾아 유명해지면 돈이 되고
돈이 되기 시작하면 탐심이 생기고
그러면 부흥이 되는게 아니라 오히려 망가지는 거 같아요.
서너 해 전에 여수에 갔다가 향일암을 코앞에 두고 내려온 적 있어요.
8월 초의 오후라 햇볕이 뜨거웠고, 기원이가 재미 없어해
갓김치 파는 가게들 쯤에서 발걸음을 돌린 것 같아요.
서대 구이, 장어 구이, 게장백반 등만 먹고 왔지요.^^
예전에 갔던 곳을 다시 찾고, 발걸음이 머물던 곳을 추억하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그때 D700을 메셨더라면 훨~ 좋은 사진을 남기셨을 것 같아요.
2003년은 똑딱이였고, 2006년은 D70이었죠.
똑딱이는 코닥 제품이었는데 한동안 잘 쓴 것 같아요.
여행이란게 가봤던 곳을 다시 찾아가 옛날 기억을 들추어보는 것도 괜찮더라구요. 어떤 곳은 정말 내가 여기 왔었나 싶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