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빛깔은 아무리 색색으로 단장을 해도 회색의 느낌을 벗기 어렵다. 겨울은 그 회색의 느낌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드는 계절이다.
그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보통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꽃소식이지만 사실 도시의 회색빛과 가장 대척점에 서는 것은 역시 초록만한 것이 없다.
처음 봄이 왔을 때 우리 집에서 그 초록은 마당 한켠을 지키고 선 배나무에서 돋아난다. 그때의 초록은 초록이라고 해야 겨우 이파리 몇 개 정도에 담긴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초록이다. 하지만 그 초록은 우리의 시선을 가득 채우며 봄의 경이로움을 선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다 세상에 초록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그때쯤 가면 양의 풍요로 보자면 초록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숨도 못쉴 지경이 될 법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냥 초록의 세상을 무심히 지나친다. 초록이 풍요로우면 그렇게 초록이 초록을 삼킨다. 그 순간 초록은 있어도 없다.
빈곤할 때 우리의 눈을 채웠던 초록은 풍요로울 때 우리 시선으로부터 배반당한다.
때로 풍요보다 빈곤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때가 종종 있다.
알고 보면 빈곤 속에 풍요가 있는 셈이다.
가난해도 그 비밀을 알면 충분히 살 수 있고, 풍요로와도 그 지혜를 모르면 풍요가 삶을 삼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