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과 열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17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에서
귤 잎사귀

나무는 수많은 잎을 내게 내밀었으나
난 잎만으로는 무슨 나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무가 열매를 보여주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무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내게 나무의 잎은 나무의 손이었고,
나무의 열매는 나무의 얼굴이었다.

나무들은 종종 얼굴도 없이
내게 손만 내밀고 있었다.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11월 17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 식물원에서
귤 열매

4 thoughts on “잎과 열매

  1. 사진도 좋지만 글은 더 좋습니다…^^
    손만 보고 정체를 모르는 것은 화자의 둔감함인가요? 아니면 여간해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려하지 않는 동시대 사람들의 속성인가요? 여하튼 느낌 좋은 글입니다.ㅎㅎㅎ

    1. 잘 지내시지요?
      손만보고 모르는 것은 둔감함 때문이죠.
      관심이 손까지가서 손도 또 하나의 얼굴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게 세상살이죠.

  2. 저희가 사는 아파트 복도에서 키우는 토마토 나무에 열린
    빨간 토마토가 화분의 얼굴이었군요!

    내일은 사진이나 한 번 찍어야 겠어요! ㅎㅎㅎ

    1. 토마토는 빨간 색이라 특히 얼굴의 색조가 예뻐요.
      대체로 과일들은 과일이 얼굴이고
      익숙한 꽃들은 또 꽃이 얼굴이 되기도 하죠.
      과일 나무들은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 수 있으니
      그것도 독특한 듯 싶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은행은
      열매보다 잎이 더 친숙한 것 같아요.
      그러니 은행나무는 잎이 얼굴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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