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의 사냥

Photo by Kim Dong Won
2009년 3월 11일 서울 능동의 어린이대공원에서

왜가리는 아주 오랜 시간
거의 미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혹시 저게 진짜 왜가리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세우고 색을 칠해 놓은 것은 아닐까
슬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가리는 거의 박제에 가까웠다.
한 마리의 식사감을 위하여
왜가리는 박제가 아닐까 하는
나의 의심도 개의치 않고
꼿꼿하게 굳은 자세로 수면을 응시하는
그 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하긴 우리도 그렇다.
그냥 살아남기 위하여
제 속을 다 긁어내고
박제처럼 우리 속의 생명 마저도 내놓는다.
왜가리나 우리나 산다는 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왜가리, 네가 박제된 몸짓으로
한 마리의 물고기를 노릴 때,
우리들 또한
우리들 속을 모두 긁어내고
박제처럼 살아가고 있다.
네가 물고기를 노리는 동안
나는 네가 움직이길 기다리며
박제처럼 굳어진채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너는 한 발을 떼며 네가 박제가 아니란 걸 증명하고야 말았다.
그걸 보고서야 나는 그 자리를 떴다.
한 발에 네가 살아있듯
나도 그저 한 발의 걸음에 내가 살아 있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4 thoughts on “왜가리의 사냥

  1. 꿈쩍않고 있는 외가리 “내 당신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주리라… ”
    이스트맨님 “저녀석 외이리 꼼작않는 거냐! 얼른 날아봐라 당장에 샷질을 해줄테다…”

    사랑은 그렇게 속모르고 서로를 위해주는 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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