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흐린 날, 대포항 갈매기들의 대화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4월 12일 강원도 속초의 대포항에서

맨 왼쪽 갈매기:
오늘은 날이 많이 흐리군.
이상해.
세상은 항상 똑같은 것 같은데
맑은 날은 세상이 넓어지고
흐린 날은 세상이 좁아져.
날씨에 따라 세상이 넓어졌다 좁아졌다 해.

맨 왼쪽에서 두 번째 갈매기:
사람들 마음도 그렇다고 하더라.
우울하면 마음이 좁아지고
신나고 행복하면 마음도 넓어진데.
그러다 마음이 너무 좁아지면 마음 속에 갇히게 된다는 군.
그래서 슬프고 우울하면 답답하기도 해.
좁은 데 갇혀 버리니까 말야.
행복하면 어디든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지.
마음이 넓어지니까 거칠 게 없어지거든.
기분에 따라 마음도 넓어졌다 좁아졌다 한다더라.

맨 왼쪽에서 세 번째 갈매기:
흐린 날 세상이 좁아지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흐린 날의 좁은 세상은
우리가 날개짓을 해 날아가면 그만큼씩 넓어져.
맑은 날은 그냥 우리가 넓은 세상을 나는 것이지만
흐린 날은 좁은 세상을 우리의 날개짓으로 넓힐 수 있어.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행복한 날엔 그냥 넓은 세상을 신나게 달리는 것이지만
우울한 날엔 달리고 달려서 좁은 세상을 넓힐 수 있어.

맨 오른쪽 갈매기:
거참, 개똥도 아닌 것들이 오늘따라 개똥철학들이네.
근데 듣고 있다 보니 너무 그럴 듯해.
그나저나 그럼 우리 오늘 어디 한번 세상 좀 넓혀볼까.
양양 바다까지 쭈욱 한방에 넓혀볼까,
아님, 북쪽으로 기수를 돌려 고성 바다까지 넓혀볼까.

갈매기들은 지붕 위에 앉아 있다
어디론가 날아갔다 오곤 했다.
그때마다 세상이 넓어지곤 했다.

2 thoughts on “날 흐린 날, 대포항 갈매기들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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