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면도를 한다.
열흘이나 혹은 보름 동안
내 방치 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렸던
털들이 말끔하게 잘려나간다.
요즘의 면도기들은 삼중날을 자랑한다.
한번 밀고 가면서 세 번을 자른다.
확인사살도 모자라 한번을 더 추가하여
아주 끝장의 끝을 본다.
면도를 하고 나서 조용히 더듬어 보면
면도를 한 얼굴은 말끔하다.
털을 밀어내고
피부의 감촉을 맛보는 손의 느낌은
기분이 좋다.
그렇게 손으로 조용히 더듬어가다 보면
꼭 예리한 삼중의 칼끝을 피해
용하게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살아남은 털들은
턱과 코밑의 구석 쪽으로 숨어 있다가
삼중날이 쓸어간 제 동료들의 복수라도 하듯
내 손끝을 까끌까끌한 감촉으로 걸고 넘어진다.
또 결을 따라 손을 쓸다
반대로 방향을 바꾸어보면
남아있는 밑둥이 일제히 일어서서
손바닥의 온신경을 거칠게 긁어버린다.
그 순간엔 거의 모든 털들이 살아있는 느낌이다.
그러면 종종 면도기를 다시 집어 들게 되지만
에이, 그냥 내버려둘까 하고
잠시 고민하게 된다.
면도할 때 가끔 그렇다.
내 털들이 내 턱밑에서 내게 반기를 들고
한쪽 구석에 그 반기를 허용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2 thoughts on “면도에 대하여”
면도하신 말끔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은데,
면도 기념일이라도 제정해야겠습니다.^^
늘 그러시지만, 오늘은 더더욱 사물에게 말을 거는
특기가 잘 발휘된 것 같습니다.
근데 저도 삼중날을 사용하지만, 요즘은 오중날도 있더군요.
면도를 안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면도를 잘 못해서
안전 면도기로 해도 피가 나곤 하더라구요.
옛날에 양쪽으로 날이 있던 도루코 면도칼로는
거의 백이면 백 상처가 났던 것 같아요.
전기 면도기도 면도를 하고 나면 턱이 따가워서 못하겠더라구요.
깎는게 아니라 잡아 뜯는게 아닌가 의심스럽곤 했어요.
제 털들이 유난히 완강한 듯 싶기도 하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