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나무 2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9월 3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무서운 바람이 지나갔다.
원래 바람은 그다지 무섭지가 않았다.
바람이 나무 앞에 서면
나무는 잎들을 흔들어 바람을 반겼고,
왁자지껄 한바탕의 수다가 둘 사이에 놓이곤 했었다.
바람은 있는 그대로의 나무와 함께 하다
곁을 지나 제 갈 길을 갔다.
나무도 바람을 보내고
언제나 있던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고
바람은 불현듯 다시 나무를 찾곤 했다.
바람은 세상 소식을 들고 왔고
나무는 동네 소식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서운 바람이 지나갔다.
무서운 바람은 세상 얘기를 전하지 않고
대뜸 나무의 속을 궁금해 했다.
너의 속내를 털어놔 보라며 나무를 거칠게 흔들었다.
서로의 얘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던 그간의 바람과 달리
무서운 바람은 너의 속을 보아야 겠다고
나무에게 의심가득한 눈초리를 들이댔다.
대부분은 속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며 등을 돌렸지만
화가 난 몇몇 나무는 제 몸을 꺾어 속을 보여주고야 말았다.
바람은 나무의 속을 보았을까.
바람이 들여다보고 싶었던 나무의 속엔
속은 없고 꺾어지면서 내지른 나무의 날카로운 비명만 남아 있었다.
바람아, 나무의 속을 궁금해하지 말라.
정작 네가 그 궁금증 끝에서 보는 것은
나무의 속이 아니라
속을 보여주기 위해 꺾어지면서 내지르는 비명 뿐이니.
나무에게 겉과 속은 따로 있질 않다.
그러니 바람아, 앞으론 절대로 나무의 속을 궁금해 하지 말라.

Photo by Kim Dong Won
2010년 9월 3일 경기도 팔당의 두물머리에서

6 thoughts on “바람과 나무 2

  1. 아침에 일어나보니 가로수들이 잎과 가지가 한꺼번에 도로에 떨어트려놨더군요.
    마흔전야에 저도 처음보는 광경이더군요.ㅎㅎ

  2. /나무의 속이 아니라
    속을 보여주기 위해 꺾어지면서 내지르는 비명 뿐이니.
    나무에게 겉과 속은 따로 있질 않다/
    저도 태풍이 지난간 나무속 보고 왔었어요
    참 마음이 아리던데…동원님이 글로 옮기신..그대로를
    다시 느껴보며 나무를 위로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저는 무언가 쓰고 싶고 나무의 넋을 느꼈는데 말로는 표현이 잘 안되었어요^^;;
    잘 듣고 갑니다~

    1. 저도 처음에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는데
      아래 사진의 나무는 마치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더라구요.
      양수리에서 뵌 한 할머니는
      60평생에 그렇게 심한 바람은 처음이라고 했어요.
      동해쪽은 그다지 큰 피해가 없는데 가는 동안에는
      쓰러진 나무를 여럿 봤습니다.
      다시 또 상처를 추스리고 제자리를 찾아가겠지 하는 마음을
      위로 삼아 갖고 지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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