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잔이 비자
그녀가 마시던 자신의 맥주를
내 잔에 따라주었다.
거품이 뽀그르르 끓어올랐다.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게 맥주와 공기 방울이 몸을 섞어
부풀어 오른 것이란 것을.
맥주와 공기 방울은 몸을 섞으며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우리들처럼
설레임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 설레임은 채 1분이 되지 않아
절반으로 가라 앉았다.
그래도 아직 절반은 남아 있었다.
난 맥주에 탐닉하지 않고
그 거품에 탐닉했다.
내가 급하게 손을 뻗어 마신 것은
맥주가 아니라 그 거품이었다.
그걸 마시면 마법처럼
그 날의 설레임이 살아날 것만 같아
조급하게 내 손을 맥주잔으로 가져갔다.
한번은 따라 주었으나
그녀가 두 번은 따라주지 않았다.
나는 그냥 거품도 없는 맥주만 들이켰다.
내가 유난히 호가든 맥주를 좋아하는 것이
혹시 거의 고의로 부풀리는 듯한
그 맥주의 거품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