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꼴이 이게 뭐니?
그 푸르고 싱싱하던 색들은 다 어쨌어?
-어느 날, 겨울 바람이 왔는데… 너무 추워보여서
겨울 바람한테 주었어, 모두.
-이런 착해빠져 가지구.
겨울 바람은 네 색은 어디에도 쓰질 못해.
추워서 덜덜 떨며 한 계절을 보내는게 걔의 운명이야.
다시는 그런 짓 하지마.
-하지만 추워 움츠린 모습이 너무 측은해 보였어.
그런데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 나의 색밖에는.
이거라도 가져갈래 했더니 좋아라 날뛰길래 그냥 주었어.
그냥 무슨 쓸모가 있겠지 싶었어.
한껏 움츠러드는 추위는 여전했지만
가끔 바람이 그 풀밭을 질주했다.
바람이 질주할 때 푸른 색이 허공으로 날렸다.
아껴가며 조금조금 뿌릴 때는 바람이 살랑거렸고
큰맘먹고 확 뿌려댈 때는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그 겨울에 바람은 양지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기 일쑤었지만
종종 몸을 일으켜 허공으로 색을 뿌리며 내달리곤 했다.
색은 투명으로 허공에 흩어져 거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봄이 왔을 때쯤 바람의 손엔 이제 색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바람은 그때쯤 색을 마치 씨앗처럼 대지 위에 뿌리고 다녔다.
싹들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 품에 색들이 안겨 자라고 있었다.
다시는 마른 잎을 탓하지 않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