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 그 속삭임

Photo by Kim Dong Won
팔당에서


팔당변의 한 작은 호수에 물결이 진다.
물결을 타고 물풀도 몸을 흔든다.

물결은 속삭임이다.
다같은 바람의 얘기이지만 파도는 속삭임이 아니라 고함이다.
사랑의 얘기가 때로 고함, 그러니까 외침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사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그녀의 귓전에만 담아주는 얘기, 바로 속삭임이다.
같은 말이라도 정색을 하고 ‘사랑한다’라고 말을 하면
그건 무엇인가 대응을 판단해야 하는 고민스런 말로 다가오지만
그 말이 ‘사랑해’라는 속삭임이 되면
그 말은 귓전에 달콤하게 담겨 가슴 속으로 녹아든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그 속삭임에 취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사랑해’가 고백일 때와 달리,
그것이 속삭임으로 오가려면 둘의 사이에 낯이 익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사랑할 때, 같이 살면 그것으로 모든게 끝은 아닌 듯하다.
물결이 없는 강변이나 호수는 무료하다.
사랑하는 사이에 속삭임이 없으면 그 둘의 사이도 무료할 것이다.
팔당변의 한 작은 호수에서 바람이 물결을 그리고 있었듯이,
아니 호수와 속삭이고 있었듯이
사랑한다면 그렇게 그녀의 귀에 속삭이며 살아갈 일이다.
물풀들이 그 속삭임에 ‘어머 닭살이야’하며 몸을 부르르 떨고 있긴 했지만
그러나 역시 나는 그 속삭임이 좋았다.
그리고 바람이 물에게 속삭이면 푸르고 투명한 속삭임이 되니
더더군다나 좋을 수밖에 없었다.

Photo by Kim Dong Won
팔당에서

6 thoughts on “물결, 그 속삭임

    1. 물결은 이상하게 제 시선을 끄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 제 블로그에 물결에 관한 글만해도 여러 편이 될 듯 싶어요.

  1. 소곤소곤… 귀를 간지럽히는 것 같구.
    잔물결을 일으키는 바람도 살갗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 하구..
    누군가가 계속 속삭여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날이네.
    오늘 바람이 참 좋네… 아마도 물결도 좋은 날일 듯.

    1. 이 날 사실은 바람 무지 불던 날이었는데 기억나?
      다음엔 저번에 지나가다가 그냥 스쳤던 곳으로 한번 가봐야 겠어.
      양수리로 들어가기 위해 터널 빠져나가자 마자 차를 틀어서 들어갔던 그곳 말야. 거기가 풍경이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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