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원래 정수장이었다고 했다.
탁한 물을 가두어 맑게 걸러내는 곳.
그러나 이제 그곳은 더이상 물을 담지 않는다.
지금의 그곳은 골격만 옛모습 그대로 두고 시간과 함께 낡아가면서 공원이 되었다.
물이 넘실대던 정수장의 한가운데 벤치가 놓이고
물결이 연신 핥아대던 콘크리트 기둥은
이젠 담쟁이 덩쿨의 품속으로 숨어버렸다.
오늘 그녀가 그곳의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참 동안 시간을 보낸다.
-생활을 버린 공간.
아마도 생활이 이곳을 지배하던 시절이라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다 정수장 견학을 이유로 들어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여유를 갖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긴 어려웠을 것이고
또 지금처럼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분위기도 아니었을게 분명하다.
대신 물은 실컷 마셔볼 수 있었겠지.
생활이란 그런 거다.
물안마시고 살 수야 없지만 그러나 생활 속에서 우리는 목을 맘껏 축이는 대신
사실 많은 것을 잃는다.
오늘 그녀가 앉아있는 벤치의 시간은
그 생활의 공간을 버렸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벤치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면
그때부터 우리는 목의 갈증을 앓는다.
우리는 왜 고생하며 열심히 일하는 것일까.
생활의 풍요를 얻기 위해?
물을 실컷 마셔보기 위해?
그게 아니라 사실은 생활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게 아닐까.
오늘 그녀가 생활을 버린 공간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는 얻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버리기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녀가 오늘 버린 공간에서 한참을 머물고 있다.
4 thoughts on “생활을 버린 공간”
다음엔 저런 멋진 벤치에서 설정컷 한장 찍어보세요.
다정한 연인들의 뒷모습 사진도 꽤 멋지더라구요.^^
저 벤치는 아니고, 저 벤치가 있는 곳에서 위로 한층 올라온 곳에서 찍은 사진이 오늘 밤에 나갈 예정이예요.
진한 포즈의 연인들이 하도 많아서 카메라를 슬쩍슬쩍 피해서 들고 다녔어요.
오~~데이트하던 그 시절이 떠오르는군요..
^^
여기 있는 커플들은 다들 진하던데…
그래도 다른 데와 달리 사진으로 찍어두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