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서 사랑을 꺼내다

Photo by Kim Dong Won

내가 그 곁을 지나칠 때
그것은 커다란 바위였지만
누군가는 그 곁을 지나며
그 속에 갇힌 한 사내를 보았다.
그는 결국 바위에 갇힌 그 사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가 바위 속의 그 사내를 꺼냈을 때
그것이 그의 조각이 되었다.
그는 조각가였으며,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였다.

산에 갈 때면 내가 항상 마주한 것은
그냥 나무가 많은 숲이었지만
누군가는 그곳에서 ‘푸른 흔들림’을 보았다.
아마 내가 갔을 때도 바람이 숲을 흔들고 지나간 적이 있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 그때면 나는 ‘푸른 흔들림’에 눈길을 주기보다
바람의 시원함에 현혹되어 눈을 감고 가슴깊이 바람을 들이마셨던 기억이다.
눈을 감아 버렸으니 ‘푸른 흔들림’이 보였을 리 없다.
내가 그냥 지나친 숲길에서
‘푸른 흔들림’을 건져올린 사람은 시인이었으며,
시인의 이름은 최정례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곁을 지나칠 때
그녀는 그냥 여자였지만
나는 그녀의 곁을 지나칠 때
그녀 속의 사랑을 보았다.
난 그걸 꺼내고 싶었다.
그래서 난 그녀를 꼬드겼다.
내 글 속으로 걸어들어 오라고.
그녀가 내 글 속으로 걸어들어 왔다가 간 날이면
내 글 속에 그녀 속의 사랑이 남았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누군가를 ‘사랑하다’와
내가 말하는 그녀 속의 ‘사랑을 꺼내다’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는
잘 판단이 서질 않는다.
어쩌면 난 돌의 경계를 넘어 조각의 세계로 가고 싶거나
숲의 경계를 너머 ‘푸른 흔들림’의 세계로 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경계의 너머에 있고,
나는 그 경계를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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