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학교 앞에서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모두가 시인이었다.
술을 먹으면 쓸데 없는 객기를 부리게 된다.
그녀에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다.
나의 실수였다.
나를 훤하게 꿰고 있는 후배 녀석들 앞으로
그녀를 불렀으니 보통 실수가 아니었다.
그녀가 도착하자 끝까지 남았던 후배가
그녀를 붙들고 멀찌감치 가더니 말한다.
형수, 형은 나쁜 사람이라서
형하고 살면 안되요.
그러니 오늘 밤 저랑 멀리멀리 도망쳐야 해요.
녀석은 그녀를 붙잡고 자기랑 도망치자고 했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낚아채더니
후배를 그곳에 팽개쳐 버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지만 후배가 자기보고 함께 도망치자고 했다는 얘기를
아주 흐뭇해하며 들려주었다.
그녀는 후배보다 더 무서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그 놈이 다 그 놈이라는 사실을.
덕분에 난 무사히 살아남았고 여지껏 그녀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