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선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다.
하지만 비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은 넘보질 못했다.
지하 주차장의 차는 우산도 없이 주차장을 빠져나가
근처의 대형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비는 그곳도 넘보질 못하고 있었다.
살 것을 산 차는
다시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오고가는 동안의 억센 빗줄기는 모두
안을 잘 밀봉해둔 자동차가 감내해 주었다.
편리하다.
그러나 이 지하와 지하로 이어지는 세상은
비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편리를 탐하면서 졸지에 비를 잃어버렸다.
비는 사실은 불편하다.
비새는 집에 살아봐서 그 점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뭄 끝의 비처럼 비는 때로 감동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감동으로 불편을 넘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항상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던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던 빗물도
집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집의 마음까지 적시고 싶었던
비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어졌다.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두꺼운 콘크리트 벽채를 적시고
집의 한가운데로 스며들 수 있었겠는가.
웃기는 얘기도 하나 생각났다.
집안으로 비가 새자 우산을 펴들고 앉아서
야, 이런 날 우산도 없는 집은 얼마나 심란하겠냐고 했다던 얘기였다.
비새는 집은 한편으로 웃음이기도 했다.
이 편리의 세상은 불편하던 단독 시절을 환기시킨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항상 문앞의 골목에 차를 대야 했던 그 시절엔
비오는 날 무엇인가를 사갖고 들어오면
예외없이 우산을 펴고 약간의 비를 맞아가며
급하게 물건을 집안으로 들여야 했다.
항상 그런 점이 불편하여
비오는 날엔 물건 사러 나가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그 불편이 지금 생각하니 소통의 기회였다는 느낌이다.
비는 불편하지만 그 순간에 사실 우리는 비와의 소통 기회를 갖는다.
부딪치지 않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으랴.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지하와 지하로 이어지는 이 생활의 궤적은
비와 부딪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데서 온다.
나는 비가 거세된 세상으로 와 버렸다.
아파트의 편리가 혹 단절을 그 댓가로 지불하고 얻어낸 선물은 아닐까.
아니, 세상의 편리란 알고 보면 모두가 단절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비오면
마치 옛친구를 맞듯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산을 펴고
빗속을 걸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4 thoughts on “지하와 지하”
그냥요..참 뭉클한걸요… 비가 집안으로 새는, 부딪쳐오는 불편함조차
소통으로 받아들이시는 동원님의 감성, 심성..참 선해요^^
참 맞아요 예전에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을 때 쩍쩍 달라 붙었던 진흙..
이젠 정말 그립거든요 아스팔트라는 편리함에 줘버린 생명이
참 그리워요..그러고 보면 좋아하는건 다 유년에 있었어요
꽃도 그렇고요 저는 다알리아꽃 지금 보면 디게 설레고 뭉클하거든요
채송화도요..분꽃도요 마치 동원님의 단독주택시절이 그런 꽃과 같이 들려요…
단독 시절에는 그게 사실 큰 불편인데.. 아파트 와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비가 와도 소리가 잘 들리질 않는 것도 그렇고. 어렸을 때 저는 비오면 운동장 한켠이 매끄러운 진흙밭이 되어 미끄럼을 타고 놀았어요. 그게 말하자면 배수가 잘 안되는 불편한 곳이었는데 놀이터가 되어 버리곤 했었죠. 배수가 잘되는 운동장엔 그런 낭만이 없어요. 불편이 꼭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이 번에 있었던 것 같아요.
지하주차장도 털보님 눈에 띄면 이렇게 대접받는군요.^^
종종 털보님이 미시사나 일상사에 관심 많으신 건 알았는데,
이렇게 지하사(地下事)까지 들어가 나와바리를 확장하실 줄은 몰랐습니다.ㅋ
아파트 생활 처음이라 눈에 띄는게 많은 듯 싶어요.
단독과 비교가 되서 아파트 문화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을 듯 싶어요.
저는 잘 적응하고 있는데 그녀가 단독 시절이 좋았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