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와 지하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3일 서울 천호동의 우리가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바깥에선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다.
하지만 비는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은 넘보질 못했다.
지하 주차장의 차는 우산도 없이 주차장을 빠져나가
근처의 대형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그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비는 그곳도 넘보질 못하고 있었다.
살 것을 산 차는
다시 대형 마트의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오고가는 동안의 억센 빗줄기는 모두
안을 잘 밀봉해둔 자동차가 감내해 주었다.
편리하다.
그러나 이 지하와 지하로 이어지는 세상은
비의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편리를 탐하면서 졸지에 비를 잃어버렸다.
비는 사실은 불편하다.
비새는 집에 살아봐서 그 점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뭄 끝의 비처럼 비는 때로 감동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감동으로 불편을 넘을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항상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던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던 빗물도
집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집의 마음까지 적시고 싶었던
비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어졌다.
마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 두꺼운 콘크리트 벽채를 적시고
집의 한가운데로 스며들 수 있었겠는가.
웃기는 얘기도 하나 생각났다.
집안으로 비가 새자 우산을 펴들고 앉아서
야, 이런 날 우산도 없는 집은 얼마나 심란하겠냐고 했다던 얘기였다.
비새는 집은 한편으로 웃음이기도 했다.
이 편리의 세상은 불편하던 단독 시절을 환기시킨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항상 문앞의 골목에 차를 대야 했던 그 시절엔
비오는 날 무엇인가를 사갖고 들어오면
예외없이 우산을 펴고 약간의 비를 맞아가며
급하게 물건을 집안으로 들여야 했다.
항상 그런 점이 불편하여
비오는 날엔 물건 사러 나가는 일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그 불편이 지금 생각하니 소통의 기회였다는 느낌이다.
비는 불편하지만 그 순간에 사실 우리는 비와의 소통 기회를 갖는다.
부딪치지 않고 어떻게 소통할 수 있으랴.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지하와 지하로 이어지는 이 생활의 궤적은
비와 부딪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데서 온다.
나는 비가 거세된 세상으로 와 버렸다.
아파트의 편리가 혹 단절을 그 댓가로 지불하고 얻어낸 선물은 아닐까.
아니, 세상의 편리란 알고 보면 모두가 단절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다음에 비오면
마치 옛친구를 맞듯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산을 펴고
빗속을 걸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3일 서울 천호동의 한 대형 마트 주차장에서

4 thoughts on “지하와 지하

  1. 그냥요..참 뭉클한걸요… 비가 집안으로 새는, 부딪쳐오는 불편함조차
    소통으로 받아들이시는 동원님의 감성, 심성..참 선해요^^
    참 맞아요 예전에 흙먼지 날리는 길을 걸을 때 쩍쩍 달라 붙었던 진흙..
    이젠 정말 그립거든요 아스팔트라는 편리함에 줘버린 생명이
    참 그리워요..그러고 보면 좋아하는건 다 유년에 있었어요
    꽃도 그렇고요 저는 다알리아꽃 지금 보면 디게 설레고 뭉클하거든요
    채송화도요..분꽃도요 마치 동원님의 단독주택시절이 그런 꽃과 같이 들려요…

    1. 단독 시절에는 그게 사실 큰 불편인데.. 아파트 와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비가 와도 소리가 잘 들리질 않는 것도 그렇고. 어렸을 때 저는 비오면 운동장 한켠이 매끄러운 진흙밭이 되어 미끄럼을 타고 놀았어요. 그게 말하자면 배수가 잘 안되는 불편한 곳이었는데 놀이터가 되어 버리곤 했었죠. 배수가 잘되는 운동장엔 그런 낭만이 없어요. 불편이 꼭 나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 이 번에 있었던 것 같아요.

  2. 지하주차장도 털보님 눈에 띄면 이렇게 대접받는군요.^^
    종종 털보님이 미시사나 일상사에 관심 많으신 건 알았는데,
    이렇게 지하사(地下事)까지 들어가 나와바리를 확장하실 줄은 몰랐습니다.ㅋ

    1. 아파트 생활 처음이라 눈에 띄는게 많은 듯 싶어요.
      단독과 비교가 되서 아파트 문화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을 듯 싶어요.
      저는 잘 적응하고 있는데 그녀가 단독 시절이 좋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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