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7월 28일 서울 천호동의 예전 우리 집

이사를 했다.
먼 이사는 아니었다.
거리로 따지면 몇 걸음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생활의 패턴으로 치면 이번 이사는 큰 변화를 가져올 듯 싶다.
단독 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던 단독은 2층 전세로 시작을 했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 딸이 그 집에서 대학까지 들어갔으니 상당히 오랫 동안 머문 집이다.
중간에 예전 주인 아저씨가 미국으로 가면서 집을 우리에게 주고 갔다.
집이 우리 집이 된 날 아이는 계단에다 문지네 집이라고 적었다.
세를 살면서 서러움을 당한 기억이 없는데
왜 굳이 문지네 집이라고 적었을까 의아했었으나 물어보진 않았다.
그냥 이제부터는 이 집이 우리 집이라는 우리들 얘기에 그랬거니 생각했다.
이 집에는 많은 추억이 서려 있다.
원래는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으나
어느 해 대추나무가 소갈병이란 병에 걸리면서
대추나무의 자리는 그녀가 사온 배나무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자리가 안좋은지 배나무도 열매를 제대로 맺질 못했다.
아울러 그녀는 균형이라도 맞추듯
비어있던 집의 한쪽켠에 감나무를 심었다.
감나무는 아주 실하게 자랐는데 그만 이번에 헤어지고 말았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뻗어올라간 장미는 특히나 잊을 수 없는 이 집의 추억이다.
아는 사람은 6월의 우리 집을 장미 다방이라고 불러주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바로 눈앞에 있었던 아파트이다.
8층으로 이사를 했다.
단독에 살 때는 땅에 발붙이고 사는 느낌인데 여긴 공중에 떠서 사는 느낌이다.
아래로 일곱 개의 층을 두고 있고, 위로는 두 개의 층을 두고 있다.
이사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다.
원래의 이사 날짜는 7월 31일이었다.
하지만 7월 29일날 이사를 가지 않으면
잔금을 주지 않겠다는 연락이 왔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우리도 이사하는 집에 잔금을 치뤄야 하는 입장이라
7월 28일날 복덕방에서 급하게 섭외해준 포장이사 업체의 도움으로
7월 29일날 결국 일단 짐을 뺐다.
그러나 도배도 안하고 들어갈 수는 없어서
이삿짐은 이사업체의 창고로 가서 이틀을 묵어야 했다.
냉장고 두 개와 어머니의 화분, 그리고 컴퓨터만
이사하는 집의 베란다로 옮겨졌다.
29일의 우리는 잘 곳을 잃었다.
결국 어머니는 외숙모님 댁으로 갔고,
그녀와 나는 동네의 모텔에서 방을 구했으나
밀려든 중국 관광객 때문에 남아있는 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둘은 두물머리로 나가
한 곳을 허탕친 뒤에야 방을 구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7월 29일은 원래 도배를 하는 가운데 인터넷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도배가 마무리된 30일날 늦게 연결이 되었다.
일단 방에 컴퓨터를 늘어놓고 접속을 확인했다.
또 30일엔 싱크대가 설치되었고,
고마운 가스 기사가 늦게와서 고생을 해준 덕택에 가스가 연결되었다.
덕분에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었다.
30일엔 도배만 끝난 텅빈 아파트에서 잤다.
그리고 원래 이사하기로 생각했었던 31일날 드디어 이삿짐이 왔다.
계획대로라면 이사를 하기로 한 날짜였다.
들어온 짐은 모두 거실에 쌓였다.
이삿짐을 빼던 날도 아침에 약간의 빗발이 뿌리더니
이삿짐을 들여놓는 날도 중간쯤부터 빗발이 뿌렸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약간의 비를 맞아가며 이사를 마쳤다.
8월 1일은 베란다와 현관문의 페인트칠을 했다.
아울러 에어콘을 설치했다.
에어콘 설치하신 분은
배관을 금방이라도 실외기를 끌고 날아오를 듯한
용트림 기법으로 처리하는 바람에
아래층의 항의를 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좋은 작품 같았으나
아래층 아파트 주민은 별로 달가와 하지 않았다.
이틀 뒤에 다시 와서 잡아주기로 했다.
8월 2일에는 원래 하루 전에 오기로 되어 있었던 책상과 책꽂이가 왔다.
비 때문에 나무가 마르질 않아 하루 늦는다는 전갈을 받았었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책상이다.
책상이 오니 갑자기 힘이 나는 듯 했다.
생전 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맞춤 책상이기도 하다.
책상에 컴퓨터를 모두 설치하고 책꽂이도 자리를 잡았다.
또 세탁기가 와서 밀린 빨래를 시작했다.
아직 장롱이 오지 않았다.
휴가 갔다와서 8월 4일날 설치해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무슨 이사가 일주일 내내 계속 되는 것 같다.
여전히 이사는 진행 중이다.

Photo by Kim Dong Won
2011년 8월 2일 서울 천호동의 이사한 아파트

14 thoughts on “이사

  1. 완전 섭섭녀 2 언니, 여기 있다고 전해 주세요.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날 쳐들어가 먼저 하룻밤 자고 올까나?ㅋㅋ
    근데 포레스트님도 그런 점에서 저랑 비슷하군요.

    말만 들어도 괜시리 설레는 물푸레나무로 만든 책상이라.
    정말 좋으시겠어요.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냄새맡고 쓰다듬고 계신건 아닌지..

    무슨 이사가 일주일내내 계속되는거 같다는 말에 빵 터졌어요.
    많이 힘드셨을텐데 죄송스럽게 말이죠.
    하나 하나 채워지는 재미도 있는거니까요. 이사 축하드립니다!

    1. 오늘로 들어올 것은 다 들어온 것 같아요.
      책꽂이가 부족해서 아무래도 하나더 맞추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책상도 작은 책상 하나가 더 필요할 듯 싶기도 해요. 쓰는 컴터가 셋인데 그녀가 저를 너무 과소평가한 듯 싶어요.
      놀러오시면 얼마든지 주무시고 가실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어요. 그날 제가 하룬데 그냥 하남에 가서 신세지지 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가느냐고 하면서 두물머리로 가고 말았어요. 지난 번 여행할 때 그녀의 선배를 만나서 저녁먹고 내가 하룻밤 재워 달라고 했더니 그 선배는 그러라고 하는데 그녀가 어떻게 그러냐고 하더라구요. 어쨌거나 이럴 때 한번 신세져 보자고 우겨서 결국 그곳에 묵기는 했지만요. 다음에 그럴 일이 생기면 제가 우겨야 겠어요.

  2. 이사 힘드셨죠
    바로 앞으로 간다고 해도, 짐을 다 꺼내어 재정리한다는 게
    보통일이 아닌데….
    고생하셨네요.
    새 집에서 행복하시고 좋은 글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1. 오늘쯤 다 정리되고 이제 우리 모입시다 그럴 줄 알았는데 아직도 거실에 짐들이 쌓여 있어요.
      그래도 예전에 흩어져 있고 쌓여 있던 책들이 다들 제 곁에서 책장에 꽂혀 있어서 더더욱 손길이 많이 갈 듯 싶어요.
      일찍 일어나면 매일 아침 하늘을 볼 수 있을 듯 싶어서 그 점도 좋은 싶구요.
      조만간 봅시다요.

  3. 어머… 정말 자세히 이사과정을 써놓으셨네요
    물푸레나무 책상 정말 멋질것 같아요!
    고생도 참 많이 하셨네요 장염…. 으…정말 이사 힘든거에요…

    1. 장염이 무슨 시간차 공격을 하는지 이제는 제가 증상이 심해지면서 고생하고 있어요.
      마치 감기 돌려가면서 다 앓듯이 제가 가장 늦게 시작한 느낌이예요.
      지금까지 이사할 때마다 날로 먹고 살았는데 이번 이사는 정말 힘든 듯.

  4. 으아~코 앞에 이웃을 두고 너무 하셨어요!
    모텔이 웬 말씀이며 두물머리 까지 가시다뇨.
    언니한테 완전 섭섭하다고 전해주세요. ㅠㅠㅠ
    그나저나 이삿짐 정리는 다 돼 가시나요?
    물푸레나무 책꽂이 진짜 기대되네요.

    1. 그래도 두물머리의 아침 풍경은 좋더라구요.
      책상이 물푸레나무구요, 책꽂이는 소나무라는 구만요.
      정리는 아직 일주일은 가야할 듯 싶어요.
      책꽃이가 딱 하나가 모자라서 아무래도 하나더 맞추어할 듯 싶다는…

  5. 간만에, 초등학생 방학과제로 낸 일기를 들여다 보는 느낌입니다.
    이사과정을 차분하게, 질서 있게 참 잘 정리했네요. 별점 다섯 개 드립니다.^^

    이사와 책상 감축드립니다.
    장미다방에서 많은 추억을 생산해 낸 것처럼,
    8층집에서도 뜻밖의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면 좋겠군요.
    아, 그리고 혹시 다음에 모텔 잡으실 일 생기면 그냥 하남으로 쳐들어오세요.ㅎㅎ

    1.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냥 iami님 집에 가서 하루 묵자고 했는데 그녀가 어떻게 그러냐고 해서 결국 두물머리로 갔어요.
      저는 염치가 없는데 그녀는 너무 예의가 발라서 하룻밤 신세질 기회가 물건너가고 말았죠.
      그래도 좋았어요.
      아침에 두물머리 나가서 사진 찍었는데 아주 좋았거든요.

  6. 우리아빠 성함은 이동원이세요 ……. 하하

    저 갈색타일로 반짝반짝 윤기 나는 주택이네요

    전 한 번에 쨔잔하고 새롭게 태어난 집보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풍경들을 감상하며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

    물푸레 나무 맞춤 책상이라니
    축하드려요~
    책상- 책상- 책상- 책상-
    괜히 춤이라도 추고 싶어요
    책상을 좋아해서요

    1. 축하해 주신거 고마워요.
      오규원의 시에 물푸레나무 같은 여자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를 유난히 좋아해서 특히 물푸레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피곤이 풀리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지난 번엔 잘 들어갔겠죠?
      미모는 여전하던 구만요.
      다음에 또 봐요.

  7. 나도 김동원인데………ㅎㅎ.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책을 완성했습니다. 중앙일보 1억원 문학상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나이도 많고 죽을 날만 기다리느니보다 죽기 전에 무어라도 꼭 다시 이루고 싶습니다.

    세상은 너무나도 어렵군요.

    그래도 “Never give up!”을 외치며 끝가지 노력할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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