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9월 23일 충북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에서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게 몸을 맡겼다.
나뭇잎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물이 무게를 덜어낸 것이 바람이란 것을.
무게를 덜어내 몸을 가볍게 한 물은
바람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때 바람의 갈기를 잡은 나뭇잎은
바람에 몸을 싣고 허공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바람이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지상에 내려앉아 휴식을 청했다.
바람이 자는 동안 잔잔한 물의 냄새가 났다.

또다른 나뭇잎 하나는 물에 몸을 맡겼다.
나뭇잎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밀도를 높인 것이 물이란 것을.
밀도를 높여 농밀한 몸을 갖게 된 바람은
지상으로 바짝 몸을 붙인 뒤
물이 되어 계곡을 흘러가기 시작했고
나뭇잎은 그 투명 속을 유영하며 함께 계곡을 내려갔다.
계곡을 내려가던 물 속의 나뭇잎은
잠시 물속의 작은 돌맹이에 몸을 밀착시키고
온몸으로 물의 흐름을 감내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물에선 허공을 누비던 바람의 냄새가 났다.

나뭇잎은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물이고, 물이 바람이란 것을.
바람을 꿈꿀 때 물이 무게를 덜어내고,
물을 꿈꿀 때 바람이 밀도를 높인다는 것을.
바람과 물이 서로의 꿈이란 것을.

Photo by Kim Dong Won
2003년 9월 23일 충북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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