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집에서 자리할 공간을 놓고
그녀의 소파와 나의 책꽂이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른바 거실을 놓고 펼쳐진 거실대첩이었다.
처음에 책꽂이는 내 방의 벽면으로 세 개가 나란히 자리할 예정이었으나
뜻하지 않게 나타난 에어콘이 벽의 폭을 상당히 잡아먹는 바람에
졸지에 하나가 내 방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난 아직 거의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은 거실의 빈공간을 노리고
책꽂이를 거실로 급파하여 자리를 선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실은 이미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으니
그 몫의 주인은 바로 그녀의 소파였다.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소파였기에
나의 책꽂이는 있지도 않은 유령의 존재와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나의 책꽂이는 거실의 남아있는 벽면을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자리를 탐했으나
결국 그 운명은 그 모든 자리 싸움에서 패하여
다시 나의 방으로 쫓겨들어 오는 것으로 마감되고 말았다.
다시 돌아온 책꽂이는 결국 나의 뒤쪽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뒤와 오른쪽으로는 책꽂이,
나의 바로 앞으로는 책상을 두고 생활하게 되었다.
3면이 책과 연관된 것으로 둘러쌓인 반도형 지형 구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나라는 바다에 둘러쌓여 살고 나는 책에 둘러쌓여 산다.
이사하면서 느낀 점의 하나는
책과 함께 CD나 DVD의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정리하기 전에 방한가운데 쌓아 CD의 탑을 만들었다.
처음에 CD를 정리할 때는 모두 투명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어서 정리를 했었다.
하지만 양을 주체할 수 없어지면서
플라스틱 투명 케이스는 얇은 종이 케이스로 대체되었다.
천천히 모든 플라스틱 케이스를 종이 케이스로 대체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다가 여유가 되면
선더볼트 포트가 내장된 외장 레이드를 하나 둘 장만해가고 싶다.
12TB 용량의 것이라면 DVD를 2천장 넘게 담을 수 있다.
책들은 모두 스캔을 떠서 디지털화하면
이 외장 레이드에 간단하게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로선 가격이 문제이다.
12TB의 외장 레이드는 현재 250만원 정도 한다.
다만 쓸모와 편리성은 훨씬 크다.
우선 속도가 놀랍고, 또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울러 가격도 앞으로 점점 내려갈 것이다.
나는 곧 내 방에서 CD나 DVD, 그리고 책이 모두 사라지고
한쪽 옆으로 레이드가 들어설 날을 꿈꾼다.
나의 책꽂이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거실은 텅비어 버렸다.
곧 소파가 점유할 것이다.
현재로선 자빠져서 뒹굴기에 아주 좋다.
그녀에게 축구공을 하나 사서 차고 놀자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거실의 한쪽 벽면에 드디어 이상열 선생님의 그림 <개나리>를 걸었다.
그림 한 점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이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 아래쪽의 전자기기들은 모두 구식이라 이곳에 고립되어 있다.
예전에는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을 했었으나
아파트는 두꺼운 벽 때문에 유선 네트웍을 구성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요즘은 컴퓨터에서 무선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음악이나 영상기기도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집안을 무선 네트웍으로 구성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번 대첩에서 패배하여 내 방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내가 그냥 호락호락하게 물러난 것은 아니다.
나는 잡지들을 그곳에 슬그머니 남겨놓았다.
그것도 그냥 남겨둔 것이 아니라 아예 탑을 쌓아 담겨두었다.
이른바 잡지의 탑이다.
한두 권씩 보면서 서서히 탑을 없애갈 생각이다.
보통 탑은 쌓는 것이지만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잡지의 탑은
읽으면서 없애는 정반대 성격의 탑이다.
옆으로 옮겨가면서 쌓고 없애고를 반복할 생각이다.
6 thoughts on “책꽂이와 소파의 거실대첩”
와우~ 이런 모습이군요.
책, CD, 잡지의 양이 엄청나군요.
전 가끔 집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잡지, CD, 카세트 무더기를 보며
부글부글 끓어 오를 때가 있거든요. 집안 청소를 책임 지고 있는 주부로서 ㅠ.ㅜ
물론 동원님의 그것들은 다~ 필요해 보이긴 하네요^^
3면이 책장 생각보다 괜챦은 구도죠.
잘 모여있으니 아주 보기에는 좋네요.
그동안 누워있는 책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다들 책꽃이에 들어가서 빳빳하게 자세들 폈어요.
먼저 자리잡으면 땡이지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돌 빼기냐~~ 하고
막 우기지 그러셨어요..ㅋㅋ
반듯반듯 각잡힌 실내를 보니 확실히 아파트구나 싶네요.
단독주택이라고 둥글둥글한 것도 아닐텐데 말이에요.
하여튼 이사하느라 고생하신 forest님 어깨도 많이 주물러 주시구요.
입 꾹 다물고 짐 정리도 열심히 도와주시구요. 아셨죠? ^^
이렇게 말씀 드리면..
짐 정리는 제가 다 합니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듯..ㅎㅎ
다른 것 모르겠고 벽이 모자라는 군요.
책장을 레일달린 슬라이드 책장으로 맞췄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정리하면서 보니까 각기 자기 영역이 있는 듯 싶어요.
책과 컴터는 제 담당이고.. 부엌과 장롱은 그녀 담당이고..
2차 거실대첩에서 잡지의 탑 같은 비장의 무기와 전술로
부디 승전보를 울려주시길.ㅋㅋ
제 신공 중 하나는 늘어놓기인데, 잠시 빌려드릴까요?
거실에선 완전히 밀려났어요.
저는 그냥 제 방으로 저의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방 한가득 늘어놓고 쓰고 있는 중이예요.
정리해 주겠다는데 제가 손을 못대게 하고 있습니다.
제꺼는 제가 정리해야 하거든요.